[광화문]짜고 치는 고스톱

[광화문]짜고 치는 고스톱

김영권 정보과학부장겸 특집기획부장
2005.09.29 11:09

정통부 "짜고 쳐라" vs 공정위 "짜고 치면 혼난다"..'함정규제' 아닌가

"넷이서 짜고 쳤다."(공정거래위원회)

"우리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KT)

"조금 봐주면서 치라고 했지, 짜고 치라고 하지는 않았다."(정보통신부)

공정위가 유선 전화업체 요금 담합건으로 두차례에 걸쳐 KT에 1402억원의 거액 과징금을 물린 것을 놓고 말들이 많다. 1402억원이면 정말 적은 돈이 아니다. KT로선 연간 1조원을 벌어 이중 7분의1를 반납하는 꼴이다.

내가 보기에도 KT와 하나로텔레콤, 데이콤, 온세통신은 분명히 요금 담합을 했다. 말 그대로 짜고 친 것이다. 그래서 손해를 본 쪽은 비싼 값에 전화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등을 이용한 소비자들이다. 공정위는 그 피해액이 1조원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이 계산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위가 담합판정을 내린 것은 틀리지 않았다.

문제는 담합은 담합인데 벌을 줄만큼 잘못한 것인지, 벌을 준다면 어느 정도가 합당하느냐는 점이다.

여기서 3자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짜고 쳤으면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한다. 봐주면서 치라는 정통부 정책도 잘못됐다. 그래도 정통부 체면을 봐서 많이 봐 준 것이다."(공정위)

"짜고 치지 않으면 항상 KT만 이긴다. 이러면 게임이 안된다. KT의 독무대가 되면 선수들이 짜고 치는 것보다 더 큰 독점 피해가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적당히 짜고 치라고 했는데 눈치도 없이 너무 막나갔다."(정통부)

"한쪽은 짜고 치라고 하고, 또 한쪽은 짜고 치지 말라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이젠 짜고 치라던 쪽도 우리를 탓한다"(KT)

이들의 항변은 나름대로 다 일리가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다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제각각 자기가 옳다고 우기는 와중에 언제나 당하는 쪽은 통신사업자들이다. 그것도 한두푼이 아니다. 상반된 정책을 내세워 문제의 소지를 만들어 놓고 그 피해를 사업자들에게 모조리 떠 넘기는 것은 정말 무책임한 짓이다.

정통부가 통신시장의 `유효경쟁' 체제를 만든다며 시행하고 있는 `비대칭규제(차별규제)' 정책은 본질적으로 `담합'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거인과 난장이가 사이좋게 게임을 하려면 거인이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여줘야 한다. 하지만 봐주는 것도 상대방이 무얼 얼마큼 원하는 지 알아야 할 수 있다. 그 핵심이 바로 `요금'이고, 직-간접적인 담합이다.

그걸 가지고 어떤 것은 행정지도를 한 것이라 봐줄 수 있고, 어떤 것은 행정지도를 넘어선 것이라고 따지는데 내가 봐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더 나아가 그 행정지도에 법적근거가 있느니,없느니 하고 다투니 통신사업자들은 진짜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를 일이다.

공정위와 정통부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분명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담합 사고'를 유발하는 상반된 정책을 내놓고 통신업체들이 얼마나 잘 함정을 피해가는지를 실험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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