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지수 1300과 '승자의 저주'

[광화문]지수 1300과 '승자의 저주'

홍찬선 기자
2005.12.15 10:25

기업인수·합병(M&A) 시장에 ‘승자의 저주(Winner's Curse)'라는 말이 있다. M&A에 성공한 기업이 가격을 너무 높게 지불함으로써 M&A 성공 뒤에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 것을 가리킨다.

1990년대 초에 있었던 AT&T의 NCR 인수가 대표적인 예다. AT&T는 1991년 3월28일, NCR을 74억8000만달러(주당 110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이는 AT&T가 당초에 제시했던 85달러보다도 29.4% 높은 수준이며, M&A 계획이 발표되기 전의 48달러보다는 130%나 뛴 가격이다. AT&T는 이렇게 비싸게 NCR을 인수해 93년부터 96년까지 30억달러 가량을 손해 본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를 전후해 ‘승자의 저주’ 함정에 빠진 기업들이 적지 않았다. 일은증권을 인수한 제일은행, 대구종금을 인수했던 태일정밀 등이 경영위기에 빠졌다. 지금도 비싸게 산 자회사 때문에 골치를 앓는 기업이 있다.

기업들이 승자의 저주에 빠지는 것은 경영자들이 과거의 성공으로 지나친 낙관주의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인수 대상 기업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내가 인수하면 시너지효과를 발휘해 높은 경영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통제에 대한 환상)이 시장가치보다 훨씬 비싸게 사들이게 된다.

소니가 삼성전자에 밀리고, 포드가 GM에게 1위 자리를 내주고 GM이 다시 경영위기에 빠졌으며, 복사기의 대명사였던 제록스가 경쟁에서 뒤쳐진 것도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지금까지의 성공이 너무 강해 이견을 허용하지 않는 ‘예스맨’ 조직이 고착돼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새로운 방식을 도입하는데 늦었기 때문이다.

‘승자의 저주’ 함정은 주식시장에서도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주가가 많이 올라 주식으로 돈벌었다는 사람이 많아지고, 주가의 추가상승에 대한 자신감이 확산될수록 함정은 많아진다.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예상을 번번이 깨고 주가가 계속 상승하면 조심해야 한다는 신중론의 목소리는 적어지고, 강세론자의 주장은 더욱 강해진다.

올들어 ‘비관론자’로 여겨지던 임송학 전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과 유동원 씨티그룹글로벌증권 리서치센터장이 중도하차한 것은 그런 조짐의 하나로 여겨진다. 코스피지수가 연말에 1400을 넘고 내년에는 1600에 도전할 것이라는 장미빛 전망이 대세(마켓 컨센서스)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주가는 일치된 견해와 반대로 움직였던 적이 많았다.

주가는 상승탄력을 받으면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오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안 사면 늦을지 모른다’는 조급증이 주식매수로 이어져 상승이 가파르다. 하지만 ‘뛰어들기 승차’가 위험한 것처럼, 빠르고 화려한 시세는 급락이란 가시를 품고 있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주가가 오를 때는 상승의 혜택을 맘껏 누리되 ‘승자의 저주’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균형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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