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볼보건설기계코리아 석위수 부사장

'한국인이 외국기업에서 글로벌 생산총괄을 맡게 된 비결은 무엇인가?'
요즘 들어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피인수된 기업의 사람에게 그룹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책임과 직책을 맡기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상식으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지난 1998년 볼보건설기계그룹이 삼성중공업의 중장비 사업부문을 인수하며 탄생했다. 단순한 글로벌 생산기지 중의 하나쯤으로 여겨질뻔 했던 한국 법인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성장가도를 달렸다. 그 결과 오늘날 그룹이 생산하는 굴삭기의 글로벌 허브로 급부상했다.
1999년부터 창원공장의 공장장을 맡아온 필자는 2003년부터 글로벌 생산총괄을 맡아 창원을 비롯해 독일과 중국의 생산라인을 책임지고 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는 국내 기업에서 외국 기업으로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며 굴삭기 생산의 세계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기존 창원공장이 갖고 있던 선진 생산시스템과 노하우에 볼보의 실리경영이 시너지가 발휘된 결과다.
서구 경영자들은 체면이나 자존심을 내세우기 보다는 실리를 중시한다. 볼보에 인수되기 전에 우리는 국내 경쟁사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 익숙해 있었다. 볼보는 달랐다. 시장점유율보다는 수익성 증대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게 볼보의 경영방식이었다.
볼보는 장기적이고 세계 시장을 보는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했다.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한동안 국내 경쟁사들 간에 난무했던 출혈 경쟁의 '악순환 고리'를 과감하게 끊고 국내 굴삭기 시장 최초로 '제값 받기 정책'을 펼쳤다. 물론 회사의 경영 안정화에 볼보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수출 증대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조직 운영에 있어서도 수직적, 종속적이 아닌 수평적, 자율적이며 개인의 창의성과 책임감을 강조했다. 이로 인해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
의사결정 과정은 낯설만큼 획기적이었다. 윗사람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부문별 담당자가 독자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각 업무별로 유기적으로 협조해 의사결정을 하는 프로세스 매니지먼트(Process Management)가 이루어졌다. 각자의 역할과 책임 구분이 명확해 담당자가 책임감을 갖고 신명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삼성그룹의 일원에서 볼보로 떨어져 나왔을 때 상실감이 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글로벌 기업인 볼보그룹의 일원으로서 근무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충만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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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볼보그룹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지금은 간접 부문의 사원들조차 의사 소통이 원활할 정도로 어학 능력이 향상됐다.
1999년 처음 독일 공장에 출장을 갔을 때다. 체구나 언어 구사력에서 상대적으로 우월감에 빠져 있던 독일인들에게 위축됐다. 그러나 우리는 창원공장에서 운영되던 업무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을 잃지 않고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 5년여만에 그들로부터 한국인의 저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다.
볼보건설기계코리아가 오늘날 볼보그룹 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상을 구축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뚝심도 큰 몫을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