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산'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기업이나 개인이 자신의 자산으로 채무를 전액 변제하지 못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파산이 있다. 둘째는 '파산상태'를 처리하는 법적 절차를 말한다.
파산절차는 주로 채무자에 대한 권리행사의 범위와 방법을 제한해 질서있는 청산과 재조직, 그리고 개인 채무자의 면책과 새 출발을 이룩하게 해준다.
개인이나 기업이 파산(첫째 의미)하면 채무자는 보호를 받기 위해 파산(둘째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사유재산제도를 기반으로, 분권화된 의사결정을 본질적 요소로 하는 시장경제에서 첫번째 의미의 파산은 잘못된 투자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르도록 해 생산을 적정 수준으로 통제하는 기능을 갖는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을 시장에서 발 붙이지 못하게 해 자원의 낭비를 막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장 퇴출을 의미하는 파산은 사회적으로 유익한 현상이다. 낭비적인 투자를 한 기업이 결국 파산과 퇴출의 형태로 징벌받는 것은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용자가 없는 공항을 잔뜩 만들고도 정책 결정의 오류를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이같은 상황을 보면 민간 부문이 공공 부문보다 효율적이다. 그러기에 정부가 전담하던 도로, 교량, 철도 등 사회간접자본투자도 민자 유치사업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파산은 사회악'이라는 견해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다. 적어도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그 운용을 위해 사용되는 불가결한 방법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많이 배웠다는 사람들이 파산과 관련한 편견을 전파하는 것을 가끔 본다. 그것은 시장경제의 역동성이 주는 불확실성을 증오하는 사상적 기반에 입각한 것이다. 자신들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사회적 또는 민주적이라는 말을 붙이고,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는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적이라고 이름붙인다. 이는 지적 허영일 수 있다.
파산은 기업을 흩어지게 하고 투자자, 거래처, 종업원 등의 복지를 해치기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역시 틀렸다. 투자와 경영에 실패한 투자자와 경영자는 기업에서 배제되는 것이 맞다. 그것이 기업을 운용할 자격이 있는 자를 시장적인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기업 자체는 무덤이 없다. 기업주는 퇴출되더라도 기업은 살아남는다. 실패한 투자자와 경영자가 교체된 기업은 새로운 자본구조로 새출발한다. 파산했던 자동차 회사의 공원은 자산을 승계한 새로운 회사에 고용된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물건을 만들지만 월급명세서에 새 회사의 이름이 찍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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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경우에도 파산이 결코 도덕적인 흠이 될 수는 없다. 부자는 기생 머리를 수없이 얹어줘도 파산하지 않는다. 노동계급은 어쩌다 한번 즐긴 유흥 음식점에서의 음주가무로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기업과 개인이 전세계적 규모의 경쟁에 노출될수록 파산의 위험은 증대된다. 하지만 경쟁체제가 주는 과실 때문에 세계화를 거스를 수는 없다.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인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이 파산하면 채권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빚'이 남겨진다. 이를 처리하는 원칙적인 방법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상태'를 그대로 두는 것이 있다. 특정 시점에 빚잔치를 하고 남은 재산을 채권자에게 넘기고 그래도 남겨진 채권은 소멸되는 것이다.
이런 형태의 파산절차에서는 파산재단이 파산채권과 상계해 모든 채권을 소멸하게 된다. 이럴 경우 모든 사람들은 앞을 보고 뛸 수 있다. 오래된 채권을 더이상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소멸시효를 두는 것도 사람들이 앞을 보고 뛰게 하자는 취지다. 이는 경제적 실패를 역사의 영역으로 수납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만족되지 못한 채무를 없앤다는 것은 약간의 정의감이 손상되는 비용 이상의 효과를 가진다.
파산을 해결하는 또 한가지 방법은 타인이 채무를 대신 갚아주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공적자금을 사용해 채무를 사회화했다. 실질가치를 잃은 휴지조각 같은 채권을 외국의 금융채권자들로부터 액면가에 '매입'하는 얼간이 노릇을 한 것이다. 그 결과는 납세자의 몫으로 남게 되고 우리 자식들의 책임으로 전가된다. 이것이야 말로 비도적이다. 파산이라는 현상이 없고 파산이라는 제도가 없는 것이 사회악이지, 파산이 사회악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