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유전무죄가 사라지려면

[법과시장]유전무죄가 사라지려면

김관기 변호사
2007.03.12 10:43

1988년 서울. 한 가족을 인질로 경찰과 대치하다 자살하거나 사살된 탈옥수들은 TV 중계를 요구했다. 그들은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우리 법이 이렇다"는 말을 남겼다.

이 말은 고도성장의 과실에서 소외돼 박탈감을 느끼던 서민의 강력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된 지금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호소력을 가질 기반은 넓어졌다.

성인 경제활동인구의 5분의1인 400만명이 빚 갚는 것을 포기하고 산다. 아직 연체하지는 않았지만 필사적인 투쟁으로 버티는 사람까지 고려하면 800만명이 될지 1000만명이 될지 모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내기 힘겨운 한계기업이 걱정돼 이자를 낮은 수준에 억제한 결과 집값이 앙등해 서민들은 박탈감에 시달리고, 빚을 내서 비싸진 집을 구입하여 가계파산의 위험에 내 몰리고 있다.

직업적으로 청탁을 일삼은 이가 고위직 판사에게 현금과 물건으로 선물을 하며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청탁을 했다. 그 고위직 판사가 다시 담당 법관에게 청탁을 일삼았다는 이유로 둘 다 구속돼 재판을 받은 사실은 단순히 법원의 일시적인 수치가 아니다.

민중은 쉽게 일반화한다. 이것을 특정인의 부패 스캔들로 인식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돈이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다"는 말을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부패한 판사에게 돈을 준 사람 중에는 지금은 고위직에 오른 모 변호사도 있다는 것이고, 그가 거대 외국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거액의 보수를 받은 바 있는데 소득 신고를 누락했느니 아니니 말이 많다. 그는 외부로 표현된 도덕성에 심한 상처를 입어 법원 내부의 한 부장판사가 그만두라고 권하는 글을 올릴 정도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법원이 사법제도 개혁을 한다고 해봤자 서민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집단이 관여하는 개혁이 쉽게 갈 리 없다. 배심제와 같은 혁명적 개혁에는 아예 손도 못대며, 사법보좌관, 예비판사제 같은 지엽적, 기술적인 변화에 그친다.

법원의 도덕성은 국민들이 요구하는 올바른 재판을 함으로써 확보될 수 있지만 이를 무시한 재판이 지금도 행해져 대다수 옳은 재판에 대한 신뢰마저 망가뜨리고 있다.

형법전에 빚을 갚지 못하는 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법원은 빚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신용평가를 통해 잘 알고 있는 신용카드 회사가 발급해준 신용카드를 사용한 자에 대해 사기죄라고 인정했다.

재벌기업의 임원으로서 어쩔 수 없이 강요에 의해 선 보증에 대해서는 간혹 효력을 부인하기도 해왔다. 반면 연체 상태의 금융소비자가 가족, 친구에게 강요해 서명을 받아낸 보증에 대해서는 "보증을 했으니 채무를 갚아야 한다"고 판결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인식될 수 있을 듯하다.

이같은 현상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대법원의 인사권으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은 판사가 인사권자의 눈치를 보고 판례와 선례를 답습하고 지시를 준수하려고 한데 있다.

판사는 10년의 임기밖에 갖지 못한다. '10년짜리 판사'에 의한 재판의 결과는 판사의 고위층에 대한 예속으로 나타났다. 사법개혁의 틈을 타고 법관에 대한 인사고과점수 제도가 생겼다. 이에 기초해 판사의 전출, 승진이 결정된다.

이제 민중은 판사가 독립하여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인다. 자신이 억울한 탄압을 당한다고 생각하는 당사자는 이제 판사는 적의 진영에 속하는 것으로 의미부여를 한다. 판사에게 석궁을 쏜 것을 보고, 폭력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보다 나도 석궁투쟁을 하고 싶다는 고백이 터져나오는 것은 민중의 사법불신이 극에 달했음을 뜻한다.

인민재판을 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민중의 요구를 충족하는 재판은 사법부로부터 독립된 건전하고 실력있는 판사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상식에 입각한 결론을 내려줌으로써 가능하다. 그렇다면 10년짜리 판사, 원하지 않음에도 행해지는 인사는 재검토해야 한다.

마침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내겠다고 한다. 판사 종신임기제를 수용한 헌법안을 내주신다면 필자는 사재를 들여 길거리로 뛰어나가 찬성 집회와 시위에 나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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