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레벗은 삼성, 경영권 승계 빨라질까

굴레벗은 삼성, 경영권 승계 빨라질까

오동희 기자, 진상현
2009.05.29 14:54

조기 승계 보단 경영수업 더 받을 것이라는 관측 우세

대법원이 29일 허태학 박노빈 등 에버랜드 경영진의 전환사채(CB) 발행에 대한 배임혐의에 대해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이건희 전 삼성 회장에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가 빨라질 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재계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로 경영권 승계에 걸림돌은 제거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영권 승계가 빨라지기보다는 경영수업을 받는 시간을 더 가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날 판결이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전 회장의 장남인 이 전무의 삼성그룹 지배에 대해 법적으로 하자가 없음을 대법원이 확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무는 삼성 그룹의 중심축인 에버랜드의 대주주(25.1%)로 이미 그룹 전반에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놓은 상태다. 삼성은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고 이 전무가 에버랜드의 경영권을 확보한 상태다.

이번 재판의 핵심 사안이 이 전무가 에버랜드의 최대주주가 되는 계기가 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의 적법성과 관련된 것이었다. 무죄 판결이 이 전무의 삼성 대주주 자격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준 셈이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음에 따라 이 전 회장의 사임으로 회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에서 이재용 전무로의 경영권 승계가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상황에서 각 계열사 사장단 등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가 작동하고 있지만 보다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할 '오너' 회장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안팎의 견해가 적지 않다.

하지만 재계 전문가들은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가 빨라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우선 지난해 특검 여파로 이 전 회장이 현직에서 물러나긴 했지만 그룹 내에 갖는 상징성이나 '실질적' 리더십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을 든다.

또 1968년생인 이 전무가 올해 41세로 아직 젊다는 점도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이 전 회장도 비교적 젊은 45세 때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당시는 부친인 '이병철 전 회장 타계'라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었다.

일각에서는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에 속도를 내지 않는 대신 이 전 회장이 다시 일선에 복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 역시 가능성이 낮다는 게 삼성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재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으로서는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여전히 삼성그룹의 대주주인 것은 틀림없다"며 "퇴임 1년 만에 굳이 복귀할 만큼 실익이 크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삼성의 고위 관계자는 "이 전 회장이 선대 회장 아래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게 20년이다"며 "이 전무가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은 것은 이제 약 8년 정도로 이번 판결이 있었다고 해서 빠르게 경영승계를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당분간은 현재의 집단지도체제가 이어지면서 이 전무의 경영 수업 강도와 역할을 강화하는 선에서 점진적인 변화를 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7월1일 이건희 전 회장의 퇴진 이후 계열사들의 독립경영체제와 투자조정위원회(위원장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브랜드관리위원회(위원장 ), 인사위원회 등 3위원회의 집단지도체제가 혼합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수요 사장단 회의도 그룹 내 주요 이슈들을 다루는 통로가 되고 있다.

삼성은 다만 지난 10년간 그룹 경영권 승계의 발목을 잡았던 에버랜드 CB 문제가 대법원의 무죄 판결로 해결됨에 따라 그룹 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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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기자의 생명은 현장에 있다' 머니투데이 산업1부 선임기자(국장대우)입니다. 추천도서 John Rawls의 'A Theory of Just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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