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N 세상 그리고 우리는]
지난 1997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태국, 인도네시아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서구 학자들과 언론들은 위기의 원인으로 동아시아의 연고 자본주의를 들먹였습니다. 대기업들이 정부와 유착해 경제를 망쳤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을 월스트리트와 워싱턴, 즉 미국 거대금융기관과 미 행정부의 유착으로 보는 글이 최근 미국의 시사종합잡지 the Atlantic에 실렸습니다. IMF 수석이코노미스로 일했고 지금은 미국의 명문대학교인 MIT 교수로 있는 사이먼 존슨이 쓴 ‘조용한 쿠데타’란 제목의 글인데요.
존슨 교수는 월가의 엘리트 금융인들이 미 행정부의 지원 아래 사상 최대의 도박을 해 위기를 초래했으며 지금도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개혁조치를 막으려 하고 있다고 월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립니다. 존슨 교수는 그동안 미국경제를 주도해 온 월가와 워싱턴 행정부의 유착체제를 ‘금융과두체제’로 부릅니다.
이 금융과두체제의 기본 축은 고위직의 교류였습니다. 대표적 인물은 로버트 루빈. 루빈은 미국 유수의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회장으로 일하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에 임명됩니다. 이후 시티은행 이사회의장으로 자리를 옮기지요. 워싱턴과 월가를 왔다갔다 합니다. 골드만 삭스 CEO였던 헨리폴슨은 조지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장관으로 일합니다. 앨런 그린스펀은 FRB의장을 그만 둔 뒤 세계채권시장의 최대 금융기관인 핌코의 자문위원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월가와 워싱턴의 인적교류는 실무진사이에서도 광범위하게 일어납니다. 골드만삭스의 직원은 이직 후 행정부로 가는 게 관행처럼 돼 있을 정도라고 존슨교수는 말합니다.
이렇게 인적으로 끈끈하게 엮여 있다 보니 워싱턴의 정책이 월가에게 유리하게 운용됐다는 겁니다. 국가 간 자유로운 자금이동,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겸업 허용,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된 CDS(크레딧 디폴트 스왚)에 대한 미 의회의 규제금지 조치 등 같은 규제완화가 이뤄졌다는 겁니다.
미 행정부의 이 같은 지원 사격 아래 월가는 한동안 승승장구합니다. 미 민간 기업이 만들어내는 이익 중 무려 41%가 월가에서 나오고 월가의 임금수준은 미 민간기업 평균의 약 두 배 수준으로 치솟습니다.
존슨 교수는 위기 발생 후 취해진 조치에도 월가의 영향력이 여전히 행사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JP Morgan의 베어스턴스와 워싱턴 뮤츄얼 인수,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메릴린치 인수, AIG와 시티그룹에 대한 잇단 구제금융 지원. 이 모든 게 투명한 원칙이 제시되지 않은 채 심야에 밀실 거래로 이뤄졌다고 지적합니다.
이번 위기에 대한 존슨 교수의 처방, 매우 단도직입적입니다. IMF전문가들이 나라 이름을 가린 채 이들 금융기관의 상태만을 보면 처방전은 다름 아닌 은행 국유화와 거대 은행의 해체가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동안 IMF가 위기에 직면한 다른 나라들에 요구한 정책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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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교수는 문제 은행을 국유화하면 기존 주식의 소각과 실패한 경영진의 교체, 자산과 부채의 건전성 확보,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매각이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합니다. 또 미국 경제를 병들게 한 금융과두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거대 은행은 중규모 은행으로 쪼개 팔자고 제안합니다. 파격적 주장이지요.
사실 미 행정부가 이번 위기를 처리해온 과정을 보면 ‘남이 하면 스캔들,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이 떠오르지요. 위기에 빠진 다른 나라에는 금융기관과 대기업의 혹독한 구조조정을 요구한 반면 정작 자국의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관대한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대선 당시 월가로부터 가장 많은 정치자금을 지원받은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 개혁조치를 취하면서 얼마나 월가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지...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