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전향男', 그때 혼내줬어야 하는데

[기자수첩]'전향男', 그때 혼내줬어야 하는데

심재현 기자
2012.06.14 19:03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식투자에서 손실을 봐 신혼집 전세금을 날리게 됐다고 고민하던 친구가 며칠 전 저녁을 사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갑작스레 목소리가 밝아진 이유가 궁금해서 그 자리에 나갔다.

그는 얼굴을 보자마자 "문재인 형님 덕"이라고 말했다. 아버지 세대부터 '새누리당' 진영에 있었던 그에게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형님'이고 '은인'이 돼 있었다. 그는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와 김두관 경남도지사도 '우리 대표님'과 '지사님'이라고 불렀다.

뒤늦게 합류한 다른 친구가 "언제 '전향'했냐"고 따져물었다. 사실 두 친구는 대학시절 신한국당에서 함께 인턴으로 일하면서 알게 된 사이고, 그중 늦게 도착한 친구는 여전히 새누리당 당직자다.

저녁을 산 친구는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남은 돈을 '문재인 테마주'에 '올인'했는데 대박이 났다고 했다. 그의 결혼이 임박한 탓에 일단 축배를 들었다. 당장 새 보금자리를 되돌려준 '문재인 형님'과 테마주에 다른 토를 달기 어려웠다.

친구는에이엔피(755원 ▼5 -0.66%)가 어떤 회사인지,유성티엔에스(4,435원 ▼25 -0.56%)유라테크(8,460원 ▼100 -1.17%)프럼파스트(4,200원 ▼140 -3.23%)등이 무슨 제품을 만드는 곳인지 알지 못했다. 정확히는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고 알 필요도 없다고 했다.

그에게 에이엔피는 PCB(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가 아니라 문 고문이 뜨면 수혜를 입을 수 있고, 투자자들은 주가가 오를 것이라고 믿는 회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런 맹목적인 믿음이 친구가 전세금을 되찾은 비결이었다.

기자는 자리를 마칠 무렵 앞으로 테마주에 절대 투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 친구가 며칠 후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저녁모임 때 치켜세운 이들을 '몹쓸 사람'이라고 불렀다. 또 다른 정치테마주를 샀는데 그게 화근이 된 것이다.

이 종목 주가가 상한가를 기록한 후 사흘 연속 하락했는데, 14일에도 10%나 급락했다. 친구는 어색한 목소리로 당장 계약해야 할 전세금 중 일부를 융통해줄 수 없느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때 그 자리에서 축배를 괜히 들었다는 후회가 밀려왔다. 그래도 친구의 긴 인생을 보면 차라리 이번 일이 약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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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현 특파원

머니투데이 뉴욕 특파원입니다. 뉴욕에서 찾은 권력과 사람의 이야기. 월가에서 워싱턴까지, 미국의 심장을 기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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