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고용, 새로운 대한민국 만든다]<1>-①[르포]열린고용 선진국, 독일을 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Hauptbahnhof)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30분 달려 도착한 프리츠 타노우가(Fritz Tarnow Straße). 조용한 주택가 한 가운데 세계적 명사의 이름이 들어간 학교가 눈에 띄었다. '안네 프랑크 레알슐레(Anne-Frank-Realschule )'.
'안네의 일기'를 쓴 유대인 소녀 작가 '안네 프랑크' 이름을 딴 학교였다. 안네가 1930년대 살았던 곳에 지난 1961년 건립됐다. 이 학교는 레알슐레, 우리나라로 치면 실업계 학교다. 학생들은 초등학교 4학년 때(만 10세) 이미 대학진학 대신 취업하기로 맘을 먹고 이 학교에 들어온다. 학교에선 다양한 직업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었다.
6년제인 이 학교에선 530여 명의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에 따라 금융, 자동차기술, IT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 교육을 받고 있었다. 프랑크푸르트시 고용사무소를 비롯해 상공회의소 등과 연계한 직업 교육이 교과 과정으로 편성된 게 특징이다.

어떻게 교육이 이뤄지고 있을까. 본관 2층 다목적 컴퓨터실로 들어갔다. 대학교 시설에 버금가는 최신 컴퓨터와 각종 기자재가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학생들은 금융이나 각종 IT 기술, 디자인그래픽 등을 배우고 있었다. 또 운동장 한 쪽엔 자동차나 각종 기계 관련 기술을 배우는 학생들의 작업실이 있었다. 학생들이 실습용으로 만든 작품들은 학교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만프레드 슐츠 군(10학년, 16세)은 "대학교를 가지 않더라도 이곳에서 실용성 높은 교육을 받은 후 실습과정을 거쳐 바로 회사에 취직할 수 있다"며 "앞으로 좋은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 훌륭한 기술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이 학교 졸업생 70~80%는 별도의 실습 기간(통상 2년)을 거친 후 주로 은행과 자동차회사, 기계생산 업체 등으로 취업한다. 어릴 때부터 직업교육이 이뤄진 덕분에 실무 능력이 뛰어나, 기업들이 앞 다퉈 데려간다. 나머지 학생들은 대학교 진학 등 다른 진로를 선택한다. 졸업생 20~30%만 취업하고 나머진 대학에 가는 한국의 실업계고와 정반대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만 바라보며 공부하는 한국과 확연히 다르다.
최근 우리 정부가 열의를 갖고 추진하고 있는 고졸채용이 독일에선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이유는 뭘까. 학생들이 어릴 때부터 자발적으로 진로를 정하고, 스스로 취업의 길을 선택하는 등 열린 교육 시스템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남의 시선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회 진출 속도가 빠르다. 이곳에선 우리나라처럼 "대학에 가라"는 부모의 성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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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기술자 등 실용성 높은 직업이 우대받다보니 굳이 대학에 갈 필요성을 못 느낀다. 이 학교에서 직업 교육을 담당하는 발터 클렘케 교사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정하면 학교에선 거기에 맞는 교육을 실시한다"며 "획일적인 교육보다 다양성, 창의성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독일을 다녀온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도 "독일은 실용교육이 잘 돼있어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바로 취업이 가능한 열린 고용의 장이다"며 "교과목을 업종별 협회와 논의를 거쳐 개설한다"고 설명했다.
이 학교처럼 독일의 실업학교 졸업생들은 기술 및 사무, 행정 관리직에 주로 취업한다. 진출 분야도 다양하다. 독일의 15~18세 청소년 중 50% 이상이 학교에서 직업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다. 고졸 직원의 연봉은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대졸의 80% 이상이다. 결국 독일의 실용적인 교육 제도가 '열린 고용'을 이끌고, 이는 독일의 중소·중견기업들이 탄탄하게 클 수 있는 자양분을 마련해준다. 실무형 기술 인재가 넘치다 보니 대기업뿐 아니라 규모가 작은 기업들도 성장할 수 있다는 얘기다.
리베르츠 그로스 교장은 "자기 적성만 맞다면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이론과 실기를 함께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실용적인 직업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다"며 "독일에선 대학을 무조건 가야하는 곳이란 생각보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란 인식이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