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자동차업계가 신흥국 전략을 재정비하고 세계 정상으로의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일본 자동차업계의 전세계 자동차 생산대수는 2600만대로 역대 최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인도, 멕시코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해외 생산이 크게 늘기 때문이다.
한때 일본 자동차업계는 적수가 없어 세계 자동차시장에서의 끝없는 질주를 계속할 것만 같았다. 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배경으로 세계 무대에 본격 등장해80년대에는 중소형차 시장 기반을 구축하고, 90년대에는 렉서스와 인피니티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를 출시해 성공가도를 달리며 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이후 금융위기가 닥치고 연이어 리콜, 엔고, 일본 대지진, 태국 홍수 등 직간접적인 타격까지 겹치면서 경쟁에서 이탈하는 듯 했다.
일본업계의 성장이 부진했던 근본적인 원인은 세계자동차산업의 성장시장이 신흥국으로 옮겨가는 트렌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자동차대중화가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어 소형차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졌지만 고품질 고가격을 고수했던 일본 자동차업계는 이에 편승하지 못하고 성장하는 신흥시장에서의 메이저 플레이어 그룹에서 소외되어갔다.
일본자동차업계는 신흥국 성장 및 수익성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를 마치고 전략을 재정비했다. 고가격·고품질 제품에 주력했던 과거와는 달리 현지 소비자의 취향에 맞고 적절한 품질과 가격을 지닌 차로 연간 가계소득 5000~3만5000 달러의 신흥국 중산층을 공략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2020년에는 아시아 신흥국의 중산층 규모가 20억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신흥국 중산층은 현지에서는 중간소득계층이지만 일본이나 선진국 기준으로는 하위소득계층이다. 따라서 그 동안 일본이나 선진시장 중산층을 대상으로 개발한 제품을 앞세웠던 전략에서 현지 사정에 맞춘 제품 전략으로 선회하는 것이다.
신흥국 중산층에게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높은 품질에 따른 고가격으로 외면당하는 일본 제품의 오버 스펙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기능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데 그치지 않고 현지 니즈를 고려하여 필요한 기능과 가격 수준을 맞추는 개발 전략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현지 부품 및 자재를 조달하면서 저 코스트로 생산하는 전략도 채택했다
통시적 관점으로 일본 자동차산업 신흥시장 진출 역사는 세 단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구형 모델을 저가격에 보급하는 전략으로 스즈키의 인도 진출을 대표사례로 들 수 있다. 스즈끼는 인도에 2세대 알토(25년 전 모델)를 ‘마루티800’으로 출시해 중산층 시장을 장악했다.
두 번째 단계는 최신 모델을 높은 가격으로 공급하는 전략이었다. 중국에서 광주기차와 합작한 혼다는 1998년 당시 최신형 ‘어코드’를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했다. 최근 세 번째 단계는 저비용 최신 모델을 공급하는 전략으로 현재 많은 메이커들이 채택하고 있다. 첫 번째 단계에 제공된 구형 모델과 두 번째 단계에서 제공된 신형 모델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선진국용으로 설계된 것이었으나, 이번 세 번째 단계에서의 모델은 신흥시장 전용으로 개발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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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이후 타격이 컸던 도요타는 신흥국 판매비율을 현재 45%에서 50%대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100만엔 이하의 소형 자동차로 중산층 공략에 나섰다.
2010년 12월부터 인도에서 자사 브랜드 중 최저가인 에티오스(Etios)를 출시한 도요타는 향후 이를 기반으로 개발한 8개 모델을 신흥국에서만 3년내 100만대 판매할 계획이며, 이를 위해 인도를 비롯해 태국과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의 생산 거점을 확충하기로 했다.
최근에 가장 공격적인 업체중 하나인 닛산자동차도 신흥시장 공략을 위해 2014년에 40만∼50만 엔대의 승용차를 출시한다. 또한 저가격이지만 믿을 수 있는 차의 대명사로 여기는 닷선 브랜드를 신흥시장 전용 브랜드로 부활시킨다. 닷선은 1933년 닛산 창업 때부터 1981년 ‘닛산’ 브랜드로 통합되기 전까지 국내외에서 판매하는 소형차와 상용차에 사용됐던 브랜드다. ‘저렴한 가격에 잘 달리는 든든한 차’라는 게 당시 일본시장의 평가였다. 일본 자동차기업이 신흥국 전용 브랜드를 별도로 구축해 내놓는 것은 처음이다.
이외에도 스즈키자동차는 인도에서 이미 30만엔대의 승용차인 ‘알토’ 등을 판매하고 있고, 미쓰비시자동차는 지난 3월 태국에서 100만엔대의 ‘미라지’를 발매했다.
미국과 유럽 자동차기업들은 중국에서의 기회를 활용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도약의 기회로 삼아왔다.
한때 경영난으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던 GM은 중국시장에서 판매가 크게 늘면서 실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었으며, 폭스바겐도 중국 승용차 판매 1위에 힘입어 세계 3위로 부상했다. 이제 신흥국 중산층 시장을 외면해서는 자동차업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일본업계의 대공세는 신흥국 시장 경쟁구도에 큰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신흥국 자동차 시장에서 본격적인 경쟁이 벌어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