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에 '궁즉통(窮則通)'이란 말이 나온다. 궁(窮)하면 변(變)하고, 변(變)하면 통(通)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을 이루기(通) 위해서는 궁(窮)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말은 제약업계에 딱 들어맞는다. 바이오회사 인수·합병, 신약 연구·개발 강화, 수출 계약 체결 등 제약업계가 스스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110년의 업력을 자랑하지만 제약업계는 그동안 유난히 변화에 둔감했다. 정부가 제약산업 육성을 이유로 제네릭(복제약) 약값을 후하게 쳐준 탓이다. 제약사들은 온실 속의 환경에 안주했다. 신약개발을 등한시했고 내수시장에서 제네릭을 파는데만 집중했다. 그렇게 해도 먹고 살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의 대규모 약가 인하로 한순간에 온실이 걷혔다. 실적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제약사들은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할 처지가 됐다. 그러자 역설적이게도 100년 넘게 꿈쩍도 않던 제약사들을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탕에는 '살아남으려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깔려 있다.
'궁즉통'은 바이오기업셀트리온(200,500원 ▼3,500 -1.72%)에게도 어울리는 말이다. 셀트리온은 최근 세계에서 처음으로 항체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개발에 성공했다. 외환위기로 실직한 직원들이 퇴직금을 모아 2002년에 회사를 만든 지 10년 만에 일궈낸 성과다.
모든 것을 걸고 사업에 나섰지만, 셀트리온은 수년간 실질적인 매출이 없는 상황에서 지출만 이어지는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서정진 회장이 사채까지 끌어다 써야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서 회장이 당시를 "하루하루 살기위해 몸부림쳐야 했다"고 회고할 정도로 회사는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
절박함은 깊은 고민과 치열한 노력을 이끌어 냈다. 셀트리온은 문제들을 하나둘 해결해 나갔고 결국 항체바이오시밀러 개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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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셀트리온의 시가총액은 5조원 내외다. 업력이 수십년이나 되는 제약회사 시가총액 상위 3개 기업의 합보다 많다. 앞으로 항체바이오시밀러가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면 이 회사의 가치는 더 올라갈 가능성도 있다.
지금까지 제약사와 셀트리온의 차이는 물러 설 곳이 있었느냐와 없었느냐에 있었다. 이제 제약사들도 충분히 절박한 상황이 됐고 변화에 나서고 있다. 상반기에 제약사들은 매출이 정체되는 가운데서도 R&D투자를 지난해보다 15% 늘렸다. 좋은 징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