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쇼핑을 시작했다. 이달 들어 연일 '팔자'에 나섰던 기관은 코스피가 박스권을 벗어나려는 상승 탄력을 보이자 뒤늦게 '사자'로 방향을 바꾸는 모습이다. 그동안 기관 움직임을 주도해 왔던 투신의 영향력이 최근 약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기관이 외국인과 함께 동반 순매수를 계속할 지 여부에 시장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29일 코스피 시장에서 기관은 1341억원 순매수하며 지난 25일 이후 3거래일째 '사자'를 계속했다. 이 기간 중 기관 순매수 규모는 3507억원으로 외국인의 이날 하루 순매수 규모(3560억원)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기관이 이달 초부터 지난 24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18거래일 연속 '팔자'에 나서며 2조4048억원 어치 주식을 팔아치웠다는 점을 감안할 때 최근 움직임은 눈에 띄는 변화다.
이창목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새 경제팀의 배당활성화 정책에 대한 기대감과 기업실적이 바닥을 찍었다는 판단에 기관이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며 "중소형주 장세에서 대형주 장세로 넘어가고 있는 것도 기관에 좋은 신호"라고 말했다.
최근 외국인이 지수를 견인하는 장세에서 기관이 매수우위로 방향을 바꾸며 동반 순매수에 나선 것은 의미가 있다. 최근 1년 동안 장이 열린 245거래일 중 외국인과 기관의 동반 순매수가 나타난 것은 총 48회다. 시장의 두 주체들이 손잡고 쇼핑에 나설 때마다 지수는 중요한 고비를 넘겼다.
지난해 8월 하순 코스피는 1850선 아래로 떨어졌다. 이후 9월 초까지 기관이 외국인 순매수에 합류하면서 지수는 1930선을 회복했다. 지난 11월 지수가 2000선을 넘어 2050선에 육박할 때도 기관의 순매수 전환은 큰 힘을 발휘했다. 올해 3월 코스피가 1900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5월 들어 2000선 돌파 역시 기관 순매수 전환이 결정적이었다.
기관은 그동안 '1900 매수 2000 매도' 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펀드 환매도 비슷한 패턴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기관은 2000선 돌파를 방해하는 주역이었다. 하지만 2000선 지지가 굳어지면서 기관도 달라진 모습이다.
기관 내부적으로도 변화가 감지된다. 그동안 '팔자'를 주도해 왔던 투신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금융투자, 연기금, 보험 등 '사자'에 나서고 있는 주체들의 '파워'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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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거래일 동안 투신은 836억원 순매도를 기록한 반면, △연기금 1911억원 △보험 1357억원 △금융투자 1223억원 등은 적극적인 순매수를 기록하며 기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기관 물량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며 '리더' 역할을 해 왔던 투신의 힘이 최근 들어 급격히 약화된 모습에 시장은 주목하고 있다.
김중원 메리츠종금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현 지수에서 과거와 비교할 때 투신의 매도는 약해졌다"며 "펀드 환매가 많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가 상승을 시도할 때마다 번번히 발목을 잡았던 투신의 '방해하는 힘'이 크게 약해졌다는 진단이다.
김 팀장은 "투신은 자체 포트폴리오 구성과 괴리가 큰 시총 대형주들이 외국인이 주도하는 장세 속에서 움직이자 당황해 하는 모습"이라며 "펀더멘털 대비 과도하게 매도한 면이 있어 이에 대한 대응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10년 동안 기관이 시장을 주도했던 시기는 지난 2004~2006년 적립식 펀드 열풍 당시와 2009~2010년 압축성장형 펀드로 불리는 '랩 어카운트'가 부상했던 때였다. 당시 시장은 철저히 투신이 중심이 된 기관화 장세를 보였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최근 기관은 연기금 중심의 움직임"이라며 "과거 투신 중심의 기관화 장세와는 거리가 멀다"고 진단했다.
시장은 투신, 금융투자, 보험, 은행, 사모펀드, 연기금 등 기관으로 분류되는 각 투자주체들이 개별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투신권의 환매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정부의 배당 정책 등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연기금, 금융투자 등의 매수가 더욱 확대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만 아직 '기관장세'를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판단이다. 현재 외국인이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다 기관 움직임도 아직 뚜렷한 방향성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민구 NH농협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은행과 투신이 여전히 매도하고 있는 등 펀드 환매가 일단락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박스권을 완벽히 탈피하기 위해서는 투신 등 국내자금이 증시에 유입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