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국제화는 선택아니라 운명..규제완화 필수"

"금융국제화는 선택아니라 운명..규제완화 필수"

대담=권성희 증권부장|정리=한은정
2015.01.26 06:43

[머투초대석]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자본시장법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할 때"

“과거 20년 동안 경제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한 주제가 있습니다. ‘은행 중심의 금융과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 중 어느 쪽이 경제효율을 더 많이 발생시키느냐’는 것입니다. 결론은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이 경제 성장을 더 촉진한다는 것인데 이는 이미 학계에서 정설로 자리잡았습니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는 학계의 이 같은 연구 결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과도한 규제 등으로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이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의 자산형성과 기업 성장의 젖줄이 되는 자본시장이 위축되면서 한국 경제의 역동성과 활력도 떨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자본시장 성장이 위축되다 보니 세계 무대에서 뛰는 금융회사도 탄생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는 “내수시장이 좁은 한국으로선 금융산업에서도 국제화는 선택이 아닌 운명”이라며 “문제는 서울이 국제화 측면에서 외딴섬처럼 고립돼 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과 부산 등 국내 금융도시가 홍콩이나 싱가포르는 물론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나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비해서도 국제화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대학교 법학대학원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나 한국의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계 발전을 위한 방안을 들어봤다.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금융의 삼성전자’라는 책도 저술한 적이 있는데.

▶일단 금융의 삼성전자는 불가능하다. 시가총액 규모면에서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회사와 맞먹는다. 골드만삭스도 시가총액은 삼성전자의 3분의 1밖에 안된다. 게다가 금융은 회사의 자체 역량뿐만 아니라 외교력과 군사력 등 소속된 국가의 전체 역량이 반영되는 분야다. 금융의 삼성전자, 한국판 골드만삭스를 만들자는 주장은 우리도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갖고 활약하는 금융회사를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국제적인 금융회사를 키우자는 논의는 오랫동안 이뤄져 왔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물건은 실물만 보면 믿고 거래할 수 있지만 금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신용이 바탕이 돼야 한다. 금융은 돈거래인데 모르는 사람과 돈거래는 못하지 않는가. 금융에서는 능력을 갖추고 신용을 쌓아 브랜드 파워를 키워야 거래가 생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어려운 과정이다. 국내 금융회사 중에 그나마 국제화에 성공한 곳이 현대캐피탈인데 현대차 브랜드와 같이 해외에 진출해 사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해외에서 현대차를 팔면서 금융을 연계시킨 전략이 성공한 거다. 이런 점에서 국내 금융회사를 가장 효과적으로 빠르게 국제화시키는 방법은 글로벌 브랜드를 가진 제조업과 연계해 금융을 해외로 진출시키는 것이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 사이에 칸막이를 쳐둔 금산분리를 해외사업에서만이라도 완화해주면 뜻하지 않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진출을 시도했다 돈만 쓰고 철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해외에 나가 경쟁하려면 실력과 브랜드 파워가 있어야 한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할 만한 실력과 브랜드 파워가 하루아침에 생기는게 아니다. 처음에는 돈만 쓰고 수익은 언제 생길지 요원할 수밖에 없다. 그 돈은 국제 경험을 쌓으면서 실력과 브랜드 파워를 키우는데 들어가는 수업료로 생각해야 한다. 금융회사 최고경영진이 해외 진출을 전향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중국계 금융회사들까지 한국으로 들어올 텐데 한국 금융회사들은 점점 더 좁아지는 안방만 지키고 있을 것인가. 줄어드는 내수를 해외에서 메울 생각을 해야지.

-금산분리가 핀테크 육성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있다.

▶국내에서는 핀테크 논의가 은행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은행은 지점이 있는 상태에서 이미 인터넷 뱅킹을 하고 있다. 현재 해외에서 진행되는 핀테크는 비은행이 지점 없이 인터넷으로만 은행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 업체가 금융 결제까지 같이 하면서 은행업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국내에선 금산분리 때문에 비은행이 은행업에 진출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핀테크의 매력은 모든 금융거래가 기록에 남아 투명해진다는 것이다. 금융거래의 투명성이 높아지면 금융회사의 책임이 높아지기 때문에 대주주가 금융회사의 돈을 자기 돈처럼 함부로 쓸 수 없게 된다. 금산분리를 주장하는 쪽의 논거 중 일부가 사라지는 것이다. 향후 핀테크 발전방안에서 이 부분이 심도깊게 논의돼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더 넓게 보면 핀테크는 빅데이터의 연장선이다. 금융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는 용도가 무궁하다.

-금융투자업계 규제와 관련해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가.

▶은행과 똑같은 수준으로 규제한다는 거다. 은행은 공공적인 성격이 있는데다 시스템 리스크를 발생시킬 수 있어 엄격하게 규제하고 감독해야 한다. 하지만 다른 금융회사는 리스크에 대한 태도와 사업내용이 은행과 다르다. 그런데도 은행에 대한 규제와 감독 규정이 정해지면 다른 금융회사에도 일률적으로 똑같이 적용된다. 오히려 은행보다 더 심하게 규제하는 측면도 있다. 비은행 금융회사들은 대개 대주주가 있고 공공성도 은행보다 떨어지며 리스크를 감수해야 수익이 생기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도 지배구조와 리스크 관리를 은행과 똑같이 취급한다. 주인이 있는 금융회사의 경영판단에 정부나 사외이사가 과도하게 개입해 여러 가지가 왜곡되는 문제도 발생한다.

-자본시장법이 시행된지 5년이 지났다. 개정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자본시장법은 여러 법을 통합해 서둘러 제정됐다. 시행된지 5년이 지난 만큼 정부가 생각하는 개선 사항이나 업계 요구를 일부 반영하는 것을 넘어 전반적으로 정비해야 할 때가 됐다고 본다. 자본시장법은 조문만 529개로 단행 법률로는 상당히 방대한데 조문이 많다는 것은 세세하게 간섭하는 규정이 많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법률 운영의 탄력성과 유연성이 떨어진다. 정부가 법을 운영하는 스타일도 재검토해야 한다. 금융투자업은 라이선스를 줄 때 굉장히 촘촘하게 구분해 하나씩 준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겨 사업을 하려면 또 라이선스를 신청해 받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확실하게 성공할 아이디어가 아니면 그만 둬버린다. 반면 라이선스를 받고 사용하지 않는 금융회사도 있다. 라이선스는 한번 주면 그만이고 사후관리가 안 된다는 얘기다. 라이선스를 포괄적으로 부여해 업계가 창의적으로 활동할 여지를 넓혀주고 사후관리를 엄격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구체적으로 완화해야 할 규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금융투자회사의 법인 지급결제가 아직 안되고 있는데 이건 규제완화가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금융투자회사의 법인 지급결제는 이미 자본시장법이 허용하고 있는데다 금융결제원에 특별참가금까지 납부했는데 하위 규정을 못 고쳐 아직 안되고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또 하나, 한국은 파생상품시장 규모가 세계 1위였는데 지금은 각종 규제로 완전히 고사 직전이다. 파생상품은 리스크 헤지 수단을 제공해 증권 유통시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증권 유통시장이 활성화돼야 발행시장이 산다. 유통시장이 활기를 띠려면 거래할 상품이 다양해야 하는데 파생상품 거래를 엄격하게 규제하다 보니 유통시장 자체가 생기를 잃고 있다.

-투자자 보호가 너무 강조되면서 금융시장의 활력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다.

▶투자자 보호가 중요하긴 하지만 자본시장법의 유일한 목적은 아니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자본시장법 제 1조의 법의 목적을 보면 국민경제의 발전이라고 명시돼 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두 가지로 첫째가 투자자 보호, 둘째가 금융투자업의 육성이라고 제시돼 있다. 투자자 보호와 금융투자업의 육성은 동격이다. 금융투자업에는 리스크가 수반된다. 원금 보장이 안 되는 투자를 한다는 거다. 투자자 보호를 강조하다 보니 원금 손실이 생기면 선수들까지 나서서 투자자를 보호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금융투자업에서는 투자자 보호만큼 투자자 자기 책임의 원칙도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산업 자체가 잘 돌아가면 저절로 투자자 보호가 되는 측면도 있는데 지금은 투자자 보호만 강조하다 보니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면피성 규제가 너무 많다. 이런 규제로 업계가 숨 쉴 여지가 없으니 산업이 어렵고 투자자도 어려워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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