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애널리스트의 '논문급' 보고서

[우보세]애널리스트의 '논문급' 보고서

송선옥 기자
2016.10.19 09:34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점점 길어지는 이유를 아세요?”

얼마전 만난 20여년 경력의 한 애널리스트가 이렇게 물었다. 실제로 투자정보업체 와이즈에프엔이 제공하는 증권사 보고서 중에서 연간이나 반기 투자전략이나 업종 전망 등을 제시하는 보고서 외 개별 종목 보고서 중에서도 50쪽이 넘는 장문의 보고서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전략 관련 보고서 중에서는 400쪽에 이르는 보고서도 있었고삼성물산(331,000원 ▲11,500 +3.6%)관련해서는 80쪽이 넘는 보고서도 있었다. 왜 이렇게 긴 보고서가 즐비한 걸까.

20년 경력의 이 애널리스트는 증시의 판이 적극적인 운용전략을 펴는 액티브펀드에서 지수를 추종하며 소극적으로 운용하는 패시브펀드로 바뀐 것을 보고서가 길어지는 이유라고 봤다. 패시브펀드 전성시대가 되면서 단편적이기 보다는 전체를 아우르는 ‘맥락 있는’ 보고서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데다 외국인 기관의 입김이 커지면서 이들의 눈길을 끌만한 보고서를 작성하다 보니 거의 논문급의 보고서가 작성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초창기 애널리스트로 시작할 때는 개인 투자자와 액티브펀드 매니저들을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 이유, 사야 하는 이유만 있으면 됐지만 박스권 장세가 지속되고 패시브펀드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기관의 마음을 사기 위해 투자 맥락을 모두 담다 보니 예전보다 훨씬 긴 장문의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지요 ”

그는 패시브펀드 확대로 애널리스트의 역할이 줄어들면서 향후 종목 담당 애널리스트의 숫자가 더욱 줄어들 것이라고 말할 땐 착잡함을 숨기지 못했다.

물론 한국 기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하면서 한국 기업의 분석을 위해 중국 소비자들의 기호 변화나 국제유가 등락이 필요한 시대가 되면서 더욱 깊은 분석을 원하는 수요가 증가한 것도 보고서가 길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패시브펀드 전성시대는 한국만의 일은 아니다. 이달 초 영국의 자산운용사 헨더슨 그룹이 미국의 야누스캐피털을 20억1000만파운드(약 2조8514억원)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운용사 모두 액티브펀드 운용사로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된 셈이다. 이들이 합병을 선택하게 된 데에는 수익률 악화에 따른 운용자산 축소가 자리잡고 있다. 헨더슨과 야누스는 올 상반기 각각 20억파운드, 3억달러의 순유출을 겪었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번 합병이 액티브펀드의 불가피한 생존전략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액티브펀드의 투자 성과가 나빠지고 투자자들이 대거 패시브펀드로 몰리면서 액티브펀드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펀드정보업체 모닝스타에 따르면 2007년 이후 패시브펀드와 액티브펀드의 자산 유입속도는 패시브펀드가 4배 더 빨랐다. 패시브펀드가 전 세계에서 운용하는 자산은 약 6조달러로 2007년 이후 230% 늘었지만 액티브펀드는 24조달러로 54% 증가했다.

재테크의 판은 이미 바뀌었다. 허황된 수익률을 쫓기보다는 방망이를 짧게 잡고 시장 수익률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유효할 수 있다. 이제 자산을 ‘RE-tech’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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