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중징계부터 때렸는데 결국 취소…법원서 깨진 금융당국 '엄벌 행정'

CEO 중징계부터 때렸는데 결국 취소…법원서 깨진 금융당국 '엄벌 행정'

조철희 기자
2026.09.06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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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무책임한 '엄벌행정⑤라임·옵티머스 사태 박정림·정영채 중징계 결국 모두 취소…'일단 때리기' 관행 손봐야

[편집자주]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기관이 '일단 때리고 보자' 식의 엄벌주의 처분을 남발하고 있다. 과도한 표적 수사 등을 이유로 검찰 수사권을 없앤 정부와 정치권의 행보와 결이 다르다. 규제 기관의 무리한 조사와 징벌적 제재는 매년 행정소송과 조세불복으로 이어져 정부가 패소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법적 다툼을 거쳐 무혐의, 취소 판결이 나면 막대한 과징금과 세금이 환급되고 이에 따른 가산금까지 국고에서 빠져 나간다. 제재 처분을 받은 기업은 경영 불확실성과 브랜드 가치 실추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다. 아무런 승자가 없는 무책임 '엄벌 행정'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짚어본다.
금융당국 CEO 중징계부터 최종 취소까지/그래픽=김지영
금융당국 CEO 중징계부터 최종 취소까지/그래픽=김지영

금융사고의 책임을 물어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내려졌던 금융당국의 강력한 제재 가운데 일부는 수년간의 법적 다툼 끝에 효력을 잃었다. 대규모 투자자 피해에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명분이었지만 금융당국이 적용한 제재 법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가 이어졌다.

처분은 경영활동과 금융권 취업 등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잘못된 처분을 바로잡는 데는 수년이 걸린다.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의 '엄벌 행정'에도 그에 걸맞은 책임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CEO 중징계, 법원서 잇따라 취소

대표적인 사례가 라임·옵티머스 사태다. 금융위원회는 2023년 11월 박정림 전 KB증권 대표에게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직무정지 3개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대표에게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문책경고를 내렸다.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한 중징계였다.

금융당국은 대규모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에서 판매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경영진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문책경고 이상은 금융회사 임원의 향후 선임까지 제한되는 중징계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는 금융위를 상대로 낸 행정소송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금융위는 대법원까지 상고했지만 지난 4월 두 사건 모두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두 중징계는 1·2심에서 모두 취소됐고 대법원에서도 금융위의 상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최종 취소됐다. 박 전 대표 사건은 4월 9일, 정 전 대표 사건은 4월 2일 각각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특히 박 전 대표 사건 1심 재판부는 보다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의무 위반이라 평가하는 것은 '사후적 평가에 의한 제재'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처분 대상자에게 불리하게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였다.

금융당국의 내부통제 책임 제재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은 처음도 아니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한 문책경고 처분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2022년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대법원은 당시 법체계에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와 '준수할 의무'를 구별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제재는 즉시, 구제는 수년 뒤

제재가 취소됐다고 이미 발생한 불확실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표가 받은 직무정지는 4년, 정 전 대표가 받은 문책경고는 3년간 금융회사 임원 선임이 제한되는 중징계다. 처분이 내려지는 순간부터 당사자의 경영활동과 향후 거취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처분을 바로잡으려면 집행정지 신청과 행정소송을 거쳐야 한다. 박 전 대표와 정 전 대표의 경우 2023년 11월 제재 이후 올해 4월 대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2년 넘게 걸렸다. 법원도 박 전 대표의 집행정지 사건에서 처분이 유지되면 본안에서 승소하더라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선 금융사고에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과 사고 이후 법규를 확대 적용해 책임자를 찾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대형 금융사고일수록 경영진에게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면서 법리보다 제재 수위가 앞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예측하기 어려운 제재는 금융회사의 의사결정을 보수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금융회사에 적극적인 위험 감수와 생산적 금융 확대를 주문하면서 한편으로 사후 제재 위험을 키운다면 금융회사들이 새로운 사업과 투자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사고에 엄정한 책임을 묻는 것과 규제기관의 처분 책임성을 높이는 것은 양립할 수 있다. 강력한 규제 권한을 가진 금융당국일수록 '일단 중징계부터'가 아니라 처분 단계부터 법리와 책임 범위를 엄밀히 따지는 '책임 행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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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 기자

머니투데이 증권부 조철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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