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님, 저 옮겼습니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광고담당 임원은 요즘 이런 전화를 많이 받는다며 그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고 토로했다. 연말 개국할 종합편성채널의 광고 영업으로 자리를 옮기는 지인들이 미리 '눈도장'을 찍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는 "아직 대놓고 광고 얘기를 하진 않지만 이직 인사 한마디면 할 말 다 한 거 아니겠냐"며 "골프나 저녁식사 제안이 들어오면 거절할 수도 없고 더욱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미디어렙(방송광고 판매대행사) 관련 입법이 지연되면서 최근 기업 광고 담당자들이 겪는 일상이다. 신문과 방송 양쪽의 영향력을 모두 거머쥔 종편이 직접 광고 영업에 나설 경우 기업들이 받는 압박은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시장질서를 규율할 미디어렙 입법은 3년 가까이 표류상태다. 현재 미디어렙과 관련해 국회 계류 중인 법안은 모두 7개. 민영 미디어렙 수, 지배구조에서부터 종편을 미디어렙 적용 대상에 넣을 지 말지 쟁점을 좁히는 데만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정치권은 너무나 한가해 보인다. 8월 국회에서 미디어렙 법안을 최우선 논의하겠다던 약속은 빈말이 됐다.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공언 역시 믿는 이들이 많지 않다.
지금 상태로만 보면 미디어렙 법안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종편이 무더기 개국을 할 가능성이 높다. 지상파 방송 역시 자율 영업 준비를 마치고 방송통신위원회의'암묵적 동의'를 기다리는 눈치다.
이렇게 되면 가뜩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는 지역 방송과 지역 신문들은 심각한 경영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종편들은 시청률 기준으로 시장경쟁에 따라 영업을 하기 때문에 직접 광고영업에 대한 우려는 지나치다고 항변하지만 기업들이 먼저 느끼고 있다. 아니라면 거대 신문을 등에 업고 있는 종편들이 어떤 압박을 행사할지, 단순한 시청률 잣대로 광고를 집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기업의 하소연이 나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 대기업 광고담당자는 "정부는 광고시장을 키워야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연일 강조하지만 정작 광고시장을 위한 최소한의 '룰'조차 정부가 외면하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언론의 공공성과 공익성, 다양성 파괴는 결국 시청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국회와 정부가 모른 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