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지중해에 위치한 세계 최고 휴양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니스'는 연중 세계적인 행사로 붐비는 관광지다. 그곳에서 1989년 5월20일부터 45일간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전권회의가 열렸다. 서울올림픽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는 ICT(정보통신기술) 국제무대 데뷔전을 준비했다. 20여명의 팀을 꾸려 ITU 관리이사국 첫 진출이라는 도전장을 냈다.
ITU 관리이사국 진출에 성공한 후 25년간 우리는 지중해-대서양-인도양-태평양을 거쳐 부산 해운대 앞까지 항해해왔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 10월 부산에서 ITU전권회의 개최를 앞뒀다.
당시 TF(태스크포스) 소속 구성원으로 참여한 필자는 어마어마한 니스의 컨벤션센터 위용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프랑스에서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미니텔' 단말기를 통해 가정에서 전화선을 이용해 열차표를 예매하는 장면에선 눈을 의심했다.
지금 인터넷 속도의 1만분의1도 안 되지만 가정에서 손끝으로 원하는 정보를 자유자재로 끄집어내는 데이터통신 장치의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당시 우리나라는 수입에 의존하던 디지털 전자교환기를 세계에서 7번째로 개발해 88올림픽을 계기로 1가구1전화 시대를 열어 아시아에서 목에 힘을 주며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가 80년 공직에 입문한 시절 집전화를 신청했는데 만 1년6개월 만에 개통될 정도였다. 1인당 국민소득은 갓 1000달러를 넘기며 조만간 '마이카시대'를 기대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전자산업 육성정책과 맞물려 정보통신망의 현대화사업을 통해 21세기 우리를 먹여살릴 정보산업은 소리 없이 준비되고 있었다.
먼저 외국산 전자교환기를 도입한 후 우리 기술로 'TDX'라는 디지털교환기를 개발하면서 반도체산업을 병행육성했고, '지능망' 기술을 통해 SW(소프트웨어)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이를 발판으로 단말기 제조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
마침내 ICT는 우리나라 GDP의 12%, 수출의 30%를 차지하면서 21세기 한국 경제를 대변하는 위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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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무역흑자 면에서 지난해 ICT 혼자 886억달러를 기록하면서 단군 이래 최대를 기록했다. ICT 무역수지가 '0'으로 균형을 유지했다면 지난해 우리 무역수지는 아마 단군 이래 최저였을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 경제는 정보통신을 근간으로 해온 ICT를 빼놓고는 얘기하기 힘들다.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도시 니스에서 승선한 유엔의 ITU라는 배가 193명의 세계 각국 정보통신장관을 태우고 25년의 긴 항해 끝에 올 10월 부산항에 입항하는 것이야말로 그 증거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고 외친 결과는 1시간을 기다려야 교환원의 손길로 전화가 연결되고 5시간을 기다려야 겨우 전보 1통이 배달되던 알랙산더 그레엄 벨의 시대를 손가락 클릭 하나로 전세계를 연결하는 '사이버 세상'으로 바꿨다. 그저 보이지 않는 사이버 세상이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비옥한 '디지털 토양'의 신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상상력과 과학기술이 만들어내는 창조경제의 씨앗은 비옥한 디지털 토양에서 뿌리내릴 수 있다.
우리에겐 비록 하늘이 내려준 자원은 없으나 우리가 새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비옥한 지구 '디지털 코리아'가 있다. 우리가 발로 딛고 서있는 지구에 유엔이 있다면 보이지는 않으나 엄연히 존재하며 우리 모두 하루에도 몇 시간씩 지내는 디지털 세상의 유엔총회, ITU전권회의가 있다. 그리고 올해는 우리가 그 주인공이다. 동계올림픽, FIFA 월드컵이라는 축구올림픽이 다가 아니다. 오는 10월20일부터 부산에서 3주간 열리는 디지털 세상의 'ICT올림픽'도 우리 모두 응원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