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당신은 '디지털 치매' 아니십니까?

[광화문]당신은 '디지털 치매' 아니십니까?

신혜선 정보미디어과학부/문화부 부장
2014.03.26 05:30

방금 하려던 얘기를 까먹거나 손에 휴대폰을 쥐고도 휴대폰을 어디에 두었지? 하는 깜빡 증세를 한탄하는 나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노화에 따른 자연스런 기억력 감퇴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는 생각에 가끔은 멈칫한다. 일명 '디지털 치매'가 심각해진다는 생각에서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전화번호를, 노래가사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다. 디지털기기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생활습관이 아예 정보를 외울 필요가 없게 하고, 이는 기억한 정보조차 빠르게 잊게 한다. 대신 머리에는 '기계조작이나 검색방법'이 입력된다.

연속극 대사처럼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 지난SK텔레콤(78,800원 ▲600 +0.77%)불통사태는 역설적이게도 이 사실을 극명히 보여줬다. 우리가 얼마나 휴대폰에 의존하는가를, '디지털 치매'에 걸렸음을 의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다는 것을.

"당시 속은 터지고 맘은 급했는데 공중전화 찾을 생각은 아예 못했어요. 생각이 났다 해도 동전도 없었고, 요금도 모르고. 그런데 공교롭게 배터리도 나간거예요. 폰아 완전 아웃됐죠. 급한 대로 타 통신사에 가입한 옆 사람의 폰을 빌렸는데 연락해야 할 지인의 전화번호를 모르더라고요. 거의 매일 통화하는 가까운 사람인데. 물론 그걸 다 어떻게 외워요. 예전엔 폰이 있어도 주요 연락처를 적은 수첩이 기본이었는데 그것도 없고. 한 마디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당시 불통사태를 겪은 한 지인의 고백이다. 이 사람은 이런저런 불편함에 SK텔레콤에 화가 단단히 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나도 마찬가지다. 주요 출입처 홍보담당 임원과 실무진 전화번호, 친구와 가까운 친인척의 연락처를 적은 오래된 꼬마수첩이 있었는데 이것을 갖고 다니지 않은 게 3년 전쯤인가. 스마트폰을 사용한 이후부터다.

지금도 휴대폰을 분실해서 전화번호가 몽땅 사라졌다고 발을 동동 구르거나(생각보다 백업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혹은 "휴대폰을 놓고 왔어요. 혹시 저랑 오늘 점심약속하신 분 손들어주세요" 하는 고참들의 사내 메시지를 종종 받는다.

휴대폰이 단순 전화가 아닌 개인의 스케줄을 관리하고, 추억을 돌이키고(사진 찍고 보관), 놀이를 하는(카카오 톡 및 게임) 내 비서와 일기장, 친구 같은 존재가 된 지 한참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난 이후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산다.

내 일상의 도우미인 손 안의 기계가 사라졌을 때 내 머리로 기억하면서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내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런 상황에 대비해 철두철미하게 '백업'을 받는다고 하지만 이는 불편함을 최소화할 뿐이지 근원적 해결책은 아니다. '기계에 의존한 삶'을 백업하는 행위마저 다시 기계에 의존하다니. 비상사태에는 이조차 무용지물이 될 것이 뻔하다.

오는 29일로 대한민국 이동통신은 30년 역사가 된다. 지난 한 해 국내 이동전화시장은 서비스(요금) 이용 기준으로는 22조9000억원, 단말기 기준으로는 15조여원(2000만여대), 총 38조원의 산업을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의 스마트폰 보급률에 따르면 일본 39.9%, 미국 39.8%, 영국 46.6%, 호주 50%, 평균 14.8%다. 우리는 보급률 67.6%로 단연 1위다.

디지털시대에 나고 자란 사람들은 나름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기억이라는 행위를 스스로 놓아버리면서 도우미처럼 부리지만 실은 스마트폰에 종속돼가는 각자의 삶도 한 번쯤 돌아볼 때 아닌가. 문득 40조원 규모로 발전한 산업이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의 기억력과 맞바꾼 결과물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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