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의 정책명이 화려하고 요란하면 일단 의심해 봐야 한다. '속빈 강정'이거나 부적합한 경우가 상당 수 있다. 미래창조과학부가 주로 쓰는 정책 작명법은 '한국형+000'이다. 뒤에 해외의 정책·제도·프로그램 등이 붙는 식이다. 이렇게 지으면 국제화시대 흐름에 능동적으로 편승해 간다는 인상을 심어줄 수 있어 홍보 효과 만점이다.
'한국형'이라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재설계해 도입하는 게 기본이다. 하지만 별 고려없이 그대로 베껴온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이런 이름을 단 정책으로 몸살을 앓는다. "무턱대고 다른 나라 정책 모델을 흉내내 혼란만 야기한 탁상행정"이란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몇 가지 사례를 보자. 우선, '한국형 프라운호퍼', 산업형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의 민간 수탁 실적에 따라 출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정부 재원 의존도를 낮추고, 저조한 기술사업화 성과를 개선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다. 독일 프라운호퍼연구소가 연간 예산 3분의 2를 지역 대·중소기업 위탁연구로 벌어들인다고 해서 도입했고, 이 연구소명을 땄다.
하지만 우리 연구현장은 "이 제도를 수용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국내 R&D(연구개발) 환경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로 인해 출연연이 기업, 대학과 협력하기보다는 국가 연구과제 수주 경쟁에만 매달려 왔다. 따라서 대학·기업과 협업 기반이 미약하다. 중소기업은 자체 예산으로 출연연에 R&D를 맡길 여력이 없다.
'한국형 엑스(X)-프로젝트', 무인차 개발 등을 시행한 '구글 X-프로젝트'를 그대로 본떴다. 미지의 과제로 남아있는 문제들을 선정한 후 새로운 발상과 연구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는 사업이다. '종이처럼 얇고 변형되는 컴퓨터' 등 최근 연구 후보작 최종 50선이 선정됐다.
호기심을 자극하기엔 충분하나 거기까지다. 세수 부족의 악순환 속에서 수 십억 원의 세금을 투입해 연구를 진행하기엔 부담이 크다.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고 성공 확률도 매우 낮아 추진할지 말지 망설여진다. 무엇보다 지원하는 연구비도 충분치 않다. 이 문제를 다루겠다고 선뜻 나서는 과학자가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국형'이 이젠 좋지 않은 것을 연상시키는 이름이 돼버린 것 같다. 세련되고 부르기 좋은 정책명보다 내실있는 정책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