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77일이 지났다. 법 취지대로 ‘클린 대한민국’ 혁명이라 할만하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향한 새로운 실험에 국민들의 기대가 크지만, 한편에선 적용 기관과 대상이 너무 광범위하고 방식도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야기한다는 비난도 있었다. 과학계도 김영란법으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김영란법에 과학기술 혁신을 저해하는 요인들이 다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최적의 국가혁신체제는 각 분야 주체들간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 이뤄지는 지식탐색, 상호학습 등이 활발할 때 구축된다. 우리 과학계도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혁신주체간 긴밀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김영란법이 이 주체들간 소통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고 있고 있다고 과학계는 하소연한다. 왜일까? 이 법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전문연구인력이 학위심사, 학회지 등의 논문심사, 연구업무 평가 및 기고 등 대외 활동을 한 달에 3회 이상 진행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4회 이상은 기관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논문심사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당장 졸업시즌을 앞둔 대학·학회에선 해당 분야 전문평가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다.
이달 기관·사업·과제평가 등을 수행해야 하는 출연연 입장에선 사람을 못 구해 아우성이다. 내년부터 기초·응용·개발연구 등의 진흥종합계획을 새롭게 마련해야 하는 정부의 처지도 마찬가지이다. 미래창조과학부 한 관계자는 “관련 위원회를 꾸리려고 해도 소속이 되는 순간부터 김영란법에 저촉되는 대상이 된다는 이유로 손사래 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토로했다.
국내 전문가의 해외활동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대와 카이스트(KAIST), 출연연 등의 4등급 전문인력은 해외 초청을 받아 자신의 연구성과를 발표할 경우, 사례금으로 30만원 이상 받으면 안 된다. 출장비도 건지기 힘들다 보니 해외 초청강연 참여를 꺼리게 됐다.
대학의 한 관계자는 “여러 지역의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이 함께 모여 수행하는 대형 협업연구 비율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연구자들이 김영란법에 발이 묶여 국제교류 활동에 소극적인 상황”이라며 “(김영란법이)글로벌 연구협력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데 적잖은 지장을 주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 법의 취지를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지식과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활발한 교류를 확산해야 할 때, 이 법이 이에 반하는 방향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지적은 앞선 사례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면이 있다. 김영란법이 우리사회를 한 단계 더 성숙하고 투명해지는 발판이 되면서도 혁신·교류를 가로막는 부작용은 가급적 최소화되도록 다듬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