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일정한 금액을 내고 무제한으로 영상을 감상할 수 있는 넷플릭스의 성공 이후 비슷한 서비스 모델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공유차량도 월정액 가입제를 내놓고, 면도날까지 주기적으로 배송받는 서비스도 나타났다. 매일 같은 시간 디저트를 배달해주는 비즈니스 모델도 있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스스로를 표현할 때 흔히 '구독경제'라고 한다. 이를 응용한 표현으로 "면도날을 구독한다"거나 "디저트를 구독한다"는 말이 일상화됐다. 이는 10여년 전부터 외국에서 쓰이기 시작한 신조어 'Subscription Economy'를 아무런 고민 없이 단순 번역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Subscription은 여러가지 의미로 번역될 수 있다. 신문과 같은 상품의 정기구독이나 정기구독료라는 뜻도 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내는 기부금이나 특정단체 회비를 뜻할 때도 있다. 핵심은 '정기성'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Subscription Economy의 개념을 들여오면서 정기성보단 '구독'에 방점을 찍은 오역이 시작됐다.
구독(購讀)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히 '구입해서 읽는다'는 뜻이다. Subscription Economy의 핵심은 정기적인 결제와 물품 제공인데, 구독경제라는 잘못된 첫 단추 때문에 면도날을 '읽고' 디저트를 '읽는다'는 엉터리 표현이 나오고 있다.
엉터리 용어가 쓰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무리해서라도 외래어 개념을 우리말로 바꾸려는 강박관념이 작용한 탓이다. 특히 문화체육관광부 등에선 외래어 표현에 대해 무리한 교정을 권고하는 일이 잦다. 메타버스는 '확장 가상세계'로, 딜레마는 '진퇴양난'으로 바꾸라는 식이다. 아이스크림은 '얼음보숭이', 코너킥은 '모서리차기'로 부르는 북한이 연상될 지경이다.
용어라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사라지거나 새로 생기고 변화한다. 언어의 특성 중 하나인 역사성이다. 현재 우리말을 구성하는 어휘들 중 상당수는 외래어에 기원을 둔 것들이다. 시대 상황에 따라 우리말에 편입된 것이다.
메타버스를 굳이 무리하게 '확장 가상세계'로 바꿔서 쓰라는 정부 방침과 기조가 여러 분야에서 무리한 번역을 야기하고, 그 결과 중 하나로 세상 만물을 다 읽어 재끼는 엉터리 '구독경제'로 나타났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