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2026년 창업트랙 전환형 발대식' 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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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정에서 배관 속 이물질을 사람이 직접 제거하는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13일 오후 대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기숙사 1층 컨퍼런스홀. 자신을 'UST 가디언'팀이라고 소개한 한 대학원생이 연단에 올랐다. 사업 아이템의 초기 시장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가 띄운 발표 화면엔 고온의 산업용 배관과 초음파 센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원자력·정유 플랜트 같은 위험 산업시설의 배관 상태를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도 점검하는 '비접촉식 초음파 진단 플랫폼'이다.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질문이 쏟아졌다. "센서와 배관 사이에 틈이 생겨도 제대로 측정되느냐"는 기술적 물음에서 시작해 "첫 시장은 어디냐", "기존 기술과 무엇이 다르냐", "누가 돈을 내고 사겠느냐"까지, 사업성을 파고드는 질문이 매섭게 이어졌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학생은 떨리는 목소리로 하나씩 답을 이어갔다.

이날 열린 '2026년 UST 창업트랙 전환형 발대식'의 한 장면이다. 연구실에서 기술의 가능성을 증명해온 대학원생들이 이제 시장에서 그 기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연구자'에서 '창업가'로 첫발을 내딛는 자리였다.
UST는 올해부터 출연연의 연구성과와 기술을 기반으로 지도교수와 학생이 한 팀을 이뤄 창업에 도전하는 '사제동행 창업'을 본격화했다. 학생과 교수가 각자의 강점을 살려 '학생 CEO-교수 CTO' 또는 '교수 CEO-학생 CTO'로 역할을 나누는 방식이다. 논문과 특허 등 연구성과를 만들어낸 학생과 연구책임자인 교수가 해당 기술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는 만큼, 이들이 직접 기술사업화를 주도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발대식에는 창업트랙 전환형 학생 등 34명이 참석했다.
지난 6월 창업트랙 전환형에 최종 선정된 5개팀이 이날 차례로 연단에 올랐다. UST는 지원한 15개팀 가운데 5개팀을 최종 선정하고, 5개 팀을 예비선정, 나머지 5개팀을 지속관리 대상으로 분류했다. 오는 10월 재평가를 통해 3개 팀 안팎을 추가로 선정할 예정이다.
선정팀이 들고나온 아이템은 △위험 산업시설 검사·공정 모니터링용 초음파 진단 플랫폼 △AI(인공지능) 기반 디지털 도로 노면 통합 의사결정 플랫폼 △웹 기반 약물동태 분석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플랫폼 △AI 기능을 탑재한 인공위성 카메라 센서 구동 모듈 △플라즈마를 활용한 가정용 무알코올 소독수 생성기 등이다. 하나같이 출연연 연구실에 쌓인 기술을 사업으로 옮기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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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무대에 오른 'UST 가디언'에 이어, 한국건설기술연구원(KICT) 스쿨팀은 사람이 일일이 조사하던 도로 노면 상태를 AI로 분석하는 플랫폼을 내놨다. 발표자는 "전국 도로 가운데 실제 상태 분석이 이뤄지는 구간이 제한적이라는 문제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균열이나 파손을 찾아내는 장비는 이미 상당수 개발된 만큼, 이 팀은 장비 자체보다 수집된 데이터를 진단·예측해 유지보수 의사결정까지 돕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건당 15만~50만원 수준인 도로 노면 조사 비용을 3000원~1만원대까지 낮출 수 있다는 게 팀의 추산이다. 서울과 대구, 광주 등에서 시범사업을 진행한 경험도 제시했다.
하지만 질문은 기술보다 사업모델에 집중됐다. "고객이 지자체냐, 도로 시공업체냐", "국가적으로 필요한 기술이지만 기업이 가져갈 시장 규모는 충분한가"라는 물음이 이어졌다. 연구개발 단계에서 '좋은 기술'이 중요했다면, 창업에서는 '누가 살 것인가'가 관건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KRIBB) 스쿨의 '클라우드 키네틱'은 약물이 몸속에서 어떻게 흡수되고 분포·대사·배출되는지를 분석하는 약물동태 분석을 웹서비스로 옮겼다. 기존 해외 소프트웨어는 가격이 비싼 데다 코드와 수식을 직접 다뤄야 해 비전문가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2022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제도 변화로 컴퓨터 모델을 활용한 '인실리코' 분석 수요가 커지는 것도 기회로 봤다. 국내외 전문가 50여 명을 만나 시장을 확인하고, 미국 현지 조사까지 진행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질문은 매서웠다. "식약처나 FDA 인증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기존 업체가 2억원에 파는 제품을 더 싸게 공급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날아들었다. 발표자는 답변을 이어가면서도 확인하지 못한 대목에는 "추가로 검토하겠다"며 연신 땀을 훔쳤다.
한국천문연구원(KASI) 스쿨팀은 AI 기능이 탑재된 소형위성용 카메라 센서 구동 모듈을 제시했다. 여러 종류의 센서를 하나의 범용 아키텍처에 연결하고 FPGA(Field-Programmable Gate Array·구입한 뒤에도 사용자가 내부 회로 구성을 원하는 용도에 맞게 다시 짤 수 있는 반도체 칩)와 온보드 AI를 활용해 필요한 데이터만 선별해 지상으로 전송하는 구상이다. 개발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데이터 전송 효율을 경쟁력으로 내세웠다.
강대임 UST 총장도 KASI 스쿨팀의 발표를 유심히 들은 뒤 질문을 던졌다. 강 총장은 "위성 한 기에 센서가 보통 몇 개 정도 들어가느냐, 무게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도 충분히 경쟁력으로 내세울 수 있지 않겠느냐"고 사업적 강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객석에서도 질문이 이어졌다. 한 학생은 "카메라 센서에 탑재한 AI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물었다. "AI를 통합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이 기술로 만든 회사에 과연 밸류가 있는가", "문제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직설적인 지적도 나왔다. 여러 출연연에서 각자의 전문 분야를 연구해온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인 만큼 질의응답은 기술의 세부적인 부분까지 파고들었다.
이날 발표에 앞서 여러 차례 기술창업과 기업 매각을 경험한 벤처 창업가 출신이자 UST 창업 분야 첫 특임교원으로 임용된 김철환 카이트창업가재단 이사장이 '딥테크 창업의 실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김 이사장은 스타트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구보다 싸게 만들거나, 혁신을 주도하거나, 고객과 강력한 관계를 구축하는 등 확실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며 "오늘과 내일의 사업이 똑같다면 이미 경쟁력을 잃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과 고객의 변화에 맞춰 비즈니스모델(BM)을 끊임없이 발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또 창업 초기에는 MVP(최소기능제품)를 빠르게 만들어 시장에서 가능성을 검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이사장은 "제품과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고객군을 찾아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회사가 성장하면 창업자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기보다 연구·마케팅·재무 등 각 분야의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고 이들을 하나의 목표로 이끄는 역량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연구자가 창업가로 변신하려면 기술 중심의 사고에서 시장 중심의 사고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정부 연구개발(R&D)과 달리 민간 투자시장은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기 때문에 기술의 우수성만 설명해서는 투자자를 설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과학자는 기술의 언어를 쓰지만 투자자는 비즈니스의 언어를 쓴다"며 "과학자 창업가는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명하는 데 그치지 말고 언제, 어떻게 돈을 벌고 투자자에게 수익을 돌려줄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부연했다.
외부 창업전문기관의 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윤기동 한국과학기술지주(KST) 부대표는 이날 출연연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시장탐색부터 법인 설립, 투자까지 단계별 창업지원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KST는 현재 184개 출자회사를 보유하고 있으며, 총 운용자금 1260억원 가운데 708억원을 출자·투자해 이들 기업의 누적 6396억원 규모 후속투자를 이끌어냈다.
윤 부대표는 먼저 출연연의 우수 연구성과를 기반으로 창업 후보를 발굴하고 시장성을 검증하는 시장탐색 프로그램 '텍스코어'를 소개했다. 오는 10월에는 출연연 학생과 연구자를 대상으로 텍스코어의 사전 단계인 '프리텍스코어' 참가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기술을 보유한 연구자의 실제 창업을 돕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KST 딥테크 기획창업 챌린지'도 운영한다. 기술 발굴부터 사업모델 구체화, 법인 설립까지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이를 거쳐 현재까지 10개 팀이 창업했고, 40개 팀이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윤 부대표는 딥테크 스타트업의 성장에서 '속도'와 '자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기술 기업의 핵심은 속도이고 속도는 자금에서 나온다"며 "창업 초기부터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자금을 고려해 전주기 자금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학생이 "투자할 때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윤 부대표의 답은 "아이템보다 사람, 비중으로 치면 70%"라고 답했다. 그는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기술의 수명도 갈수록 짧아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사업 아이템만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결국 변화에 대응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 사업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초기 사업 아이템의 완성도 못지않게 창업자의 실행력과 문제해결 능력, 변화에 대응하는 역량이 투자 판단의 핵심 요소라는 설명이다.
UST가 올해 처음으로 창업트랙을 만든 이유는 연구실과 시장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다. UST 자체 조사에서 학생 341명 중 90명(26%)이 창업 의향이 있다고 답했지만, 상당수는 학위 취득 이후 창업하기를 희망했다. 학업과 창업을 병행하기 어렵고 휴·겸직 규정이나 창업 공간·자금 등이 부족한 것이 걸림돌이었다.
UST는 이를 기존 재학생을 위한 '전환형'과 신입생을 뽑는 '마스터형'으로 나눴다. 올해 9월 시작하는 전환형은 기존 학위과정을 유지하면서 창업을 병행하는 방식이다. 선정팀에는 내년 8월까지 시제품 제작과 홍보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창업과제비를 팀당 5000만원 지원한다.
창업 실전교육과 전문가 특강을 포함한 부트캠프를 두 차례 열고 팀별 단계에 맞는 멘토와 외부 지원사업도 연결한다.
학사제도도 창업 친화적으로 바꾼다. 창업휴학을 기존 4개 학기에서 최대 6개 학기로 늘리고, 필요하다며 연장이 가능하다. 창업 준비와 활동을 '현장연구' 학점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했다. 석사는 창업 실적으로 논문을 대체하고, 박사과정은 일정 요건을 충족할 경우 학술지 게재 의무를 면제하는 등 학위 취득 조건도 유연화한다.
내년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신입생을 창업 역량 중심으로 뽑아 '창업전문석사' 학위를 주는 마스터형 도입도 추진한다. UST는 지난 6월 교원 1687명을 대상으로 창업으로 연결할 수 있는 딥테크 유망기술을 조사해 31건을 발굴했고, 이 가운데 10건을 우선 검토 대상으로 추렸다. 총 32학점의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관련 학규를 개정해 2027년 신입생 선발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행사가 끝나갈 무렵 발표장을 나서는 학생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한 학생도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새로운 숙제를 받아든 학생도 있었다. 강 총장은 "국가연구소 기술을 기반으로 학생과 교수가 함께 창업에 나서는 성공사례가 많이 탄생할 수 있도록 전문가 교육과 멘토링, 창업지원비 지원 등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며 "국가연구소 딥테크 창업 활성화를 통해 기술이 시장에서 새롭게 재탄생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힘쓰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