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라면서 '형만한 아우 없다'는 이야기를 심심치않게 들어왔던거 같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결혼하여 형제를 키우면서 반대의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혈기왕성하고 주의 산만한 아들들을 키우다 보면 크게 작게 야단칠 일이 생긴다. 큰 아이를 혼낼 때면 작은 아이가 구석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시늉을 한다. 책을 거꾸로 들고 있는 걸 보면 진짜 읽고 있는 건 아닌 게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에는 책을 읽고 문제를 풀면 포인트 점수를 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한달간 일정 포인트를 얻으면 칭찬과 상품을 받는다. 어느 날 독서 문제를 풀고 있는 큰 아이 옆에 작은 녀석이 딱 붙어 앉더니 형이 쓰는 답안을 연습장에 적고 있는 것이다. 책은 읽지 않고 포인트를 챙기려는 작은 아이를 혼내주긴 했지만 녀석의 발상이 재미있어서 한참 웃었다.
동생은 형을 보면서 형이 직접 몸으로 겪은 시행착오를 현저히 줄이고 좋은 점들은 벤치마킹하곤 한다. 매년 있는 학교 행사나 시험에서도 형의 경험은 동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
기업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요즘 시쳇말로 주가를 날리고 있는 기아자동차 역시 형님 덕을 많이 본 기업이다. 기아차의 미국시장 진출기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기아차는 현대차에 5년이나 뒤진 2010년에야 미국 조지아에 북미공장을 처음으로 갖게 되었지만, 현대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국시장에 수월하게 안착했다. 형님의 숱한 시행착오 덕분이었다.
형인 현대차의 북미시장 진출기는 눈물겨웠다. 1986년 엑셀 신화를 만들며 미국시장에 화려하게 입성했지만, 품질결함으로 단번에 '형편없는 싸구려 차'로 낙인 찍혔다.
1989년엔 캐나다 부르몽에 연산 10만대의 북미공장을 짓고 그 해 론칭한 쏘나타를 앞세워 의욕을 다시 불태웠다. 그러나 부르몽공장은 93년 문을 닫아야 했다. 전략 부재에다 품질 문제를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르몽공장에서 뜯어낸 일부 생산설비는 인도공장으로 옮겨졌는데, 2004년 기자가 인도 첸나이공장을 방문했을 때 부르몽에서 가져왔다는 대형 압축 프레스가 강판을 연거푸 찍어내던 모습이 생생하다.
독자들의 PICK!
엑셀 오명에다 부르몽 실패까지 겪으면서 현대차는 근 10년간 북미공장을 짓겠다는 엄두를 내지 못했다. 2002년, 와신상담 끝에 착공한 미국 앨라배마공장이 2005년 준공됐지만, 공장이 정상 가동될 때까지 소소한 문제들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하지만 기아차는 현대차가 겪은 많은 시행착오를 피하며 북미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었다.
특히 북미공장 가동을 계기로 기아차의 지난해 미국 판매는 2008년보다 78%나 급증했다. 미국시장에 뛰어든 브랜드 가운데 가장 높은 성장세였다. 지금의 판매 속도라면 기아차의 올해 미국 판매량은 55만대를 넘어, 65만대 이상 팔릴 것으로 보이는 현대차를 바짝 추격할 전망이다.
다만 최근 블룸버그통신은 기아차가 높은 판매 신장률에도 불구하고 현대차의 동생 역할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보다 딜러 인센티브를 2배나 많이 제공하고, 신차 구매자의 선호도 역시 상대적으로 크게 낮은 점 등 몇 가지 이유를 댔다.
사실 현대·기아차그룹이 '형만한 아우없다'라는 전략을 버리지 않는 한 기아차는 현대차를 넘어설 수 없다.
얼마전 기아차는 현대 제네시스보다 천만원 가량 비싼 K9을 출시해 눈길을 모았다. 하지만 기아차의 기함인 K9은 현대차의 기함 에쿠스보다는 하위 모델로 만들어졌다. 현대차그룹이 '형만한 아우'를 키울 의향이 아직은 없음을 읽게 한다.
그러나 시절이 변하는 만큼, 형만한 아우들이 나와 주기를 기대해 본다. 형 또한 잘 나가는 동생을 통해 배우고 한 단계 더 발전하면서 난형난제의 귀감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