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각국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구(EXIT) 전략을 고민했었다. 출구전략은 경기부양을 위해 살포한 자금이 물가를 자극하지 않도록 시중의 유동성을 다시 거둬들이는 정책을 말한다.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미국발 금융위기가 터지고, 2008년 가을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하자 전 세계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이했다.
이에 따라 각국은 재정을 통한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앞 다퉈 쏟아냈고,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융 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재정정책과 보조를 맞춰 기준금리를 인하하고, 장단기 유동성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제공하는 통화완화 정책을 구사했다.
당시 미국에 머물고 있던 기자는 주요 고속도로 어디에서나 대규모 보수작업을 목격할 수 있었다.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기부양'을 기치로 내건 미국 정부가 '미국 경제회복 및 재투자법'을 통해 고속도로 등 사회간접자본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도 2007년 9월 5%가 넘던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해 2008년 12월에는 사실상 제로수준(0~0.25%)까지 금리를 떨어뜨렸고, 금융위기 전 8000억달러였던 연준의 총자산을 2조달러 이상으로 확대하며 모기지담보증권(MBS)과 미국 장기 국채를 대량으로 사들였다. 이러한 대응책은 글로벌 공조차원에서 주요국에서 '대동소이'하게 추진되었다. 중국은 우리 돈으로 740조원(4조위안)에 달하는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썼다.
글로벌 공조가 효과를 거두면서 각국의 경제는 2009년 저점으로 회복세로 전환, 2010년부터는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미국에서는 역 레포(Reverse Repo)와 지급준비금에 대한 이자율 지급 등을 통해 유동성 총량을 묶어 두면서 금리를 올리는 방안이나 MBS 등 연준 자산을 언제쯤 매각하는게 좋은지에 대한 논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미국은 침체된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해 끝내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았지만, 한국은 2010년 7월 기준금리를 다시 올렸고, 유럽중앙은행(ECB)도 금리를 인상함으로써 마치 글로벌 경제위기가 종료된 듯한 인식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 세계 각국의 출구전략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ECB는 2011년 중순 다시 금리를 내렸고, 미국 연준은 2014년 말까지는 제로수준의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출구전략 논의가 너무 빨랐음을 모두들 자인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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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성급한 '출구전략'은 문제가 되었다. 1990~1991년 리세션을 겪은 미국이 1994년 경기부양책을 성급하게 거둬들이는 출구전략을 썼지만, 그 여파는 멕시코 페소화 폭락사태로 이어졌고, 심지어 1990년대 후반 아시아 외환위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까지 있다.
유럽 사태가 긴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 주말 스페인은 유럽 당국과 조율을 통해 최대 1000억유로, 146조원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공식 신청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그리스 재총선 결과가 가져올 수 있는 악영향을 염두에 두고, 선제적 대응차원에서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으로 읽힌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이렇다보니 지난 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12개월째 동결한 것을 놓고 말이 많다. 일각에서는 중국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이 유가하락을 빌미로 일제히 금리인하에 나선 것을 빗대 한은이 미국 금융위기 때와 비교해 너무 몸을 사리는 게 아니냐고 지적한다.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기 때문에 '물가안정'을 지상 최대 과제로 삼고 있는 한은으로서는 그리스 재총선 등 향후 전개될 유럽 사태를 좀 더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두둔한다.
이유야 어떻든, 한은으로서는 고민이 많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한은에만 경기부양의 총대를 메게 하면 안 된다. 설령 경기부양적 통화정책이 사용되더라도 재정정책이 병행되어야 정책적 효과가 크다. 그런 점에서 한국 정부가 어떻게 '레임덕'을 극복하고 효과적인 정책을 펴나갈지에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