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세기 루이 13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 '삼총사'에서 주인공 달타냥은 자신을 '시골뜨기'라고 놀린 왕궁 근위대 삼총사와 차례차례 결투를 약속한다. 하지만 결투가 벌어질 찰라 당대 권력자 리슐리외 추기경의 근위병과 시비가 붙어, 달타냥과 삼총사는 근위병을 상대로 멋진 승리를 거두며 서로 동지가 된다.
1803년 4월 어느 날 런던 인근에서 영국군 고위 장교들이 벌인 '결투'는 소설과 달리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결투'에서 맥나마라 해군 대령은 부상을 입었고 몽고메리 보병 중령은 총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날 오전 두 사람이 공원에 끌고 나온 개 두 마리가 싸움을 벌인 게 화근이었다. 한쪽에서 "저 놈의 개를 때려 잡겠다"고 말하면서 서로 감정이 폭발해 결투 신청으로 이어졌고, 결국 개싸움이 사람을 잡는 지경에 이르렀다. 낭만이나 고상함과 거리가 먼 결투였던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은 야만적인 짓이라며 결투를 막으려고도 했다. 하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오래도록 '결투'의 관행이 이어져 왔다.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의 수상 조르주 클레망소는 권총과 칼을 가리지 않고 열두번이나 결투에 나설 정도였다.
미국이라고 예외일까. 흑인노예를 해방시킨 에이브러햄 링컨은 일리노이 주의회 의원 시절 결투 직전, 입회인의 설득으로 싸움을 접은 적이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링컨이 결투를 벌이다 숨을 거두었다면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을지 모른다.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미국 역사상 '버-해밀턴' 대결만큼 유명한 결투는 없다. 1804년 7월 뉴저지 허드슨 강변에서는 당시 미국의 대표적 연방주의자이자 초대 재무장관을 역임한 알렉산더 해밀턴이 그의 정적(政敵)이면서 현직 부통령인 애런 버와 결투를 벌이다 총에 맞아 숨지고 말았다.
비극의 발단은 4년 전 치러진 미국의 제3대 대통령 선거 시스템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은 1인 2표제, 즉 선거인이 2명의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를 하고 선거인단 과반수 득표자 가운데 최고 투표자와 차점자가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이 되는 방식을 채택했다. 투표 결과 토머스 제퍼슨과 애런 버가 선거인단 득표수에서 동점을 이루었고, 규정에 따라 하원에서 결선투표가 진행됐다. 무려 36번의 결선투표가 이어진 끝에 제퍼슨이 승리해 대통령이 되었다. 하원 실세인 해밀턴이 노골적으로 제퍼슨을 밀었기에 가능했다.
이렇게 뽑힌 대통령과 부통령이 제대로 협력할리 없었다. 더욱이 버 부통령은 해밀턴을 너무나 미워한 나머지 결투까지 벌였고 해밀턴의 목숨을 빼앗고 말았다. 이처럼 황당한 일을 겪은 후 미국은 그해 9월 선거인이 대통령과 부통령을 구분하여 선거를 치르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이로써 정·부통령 선거에서 부통령 후보를 의미하는 러닝메이트 제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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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미국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의 밋 롬니가 각각 조 바이든과 폴 라이언을 러닝메이트로 삼아 선거를 치르게 된 것도 피로 얼룩진 '버-해밀턴' 결투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미국 동부 시간 6일 0시 미국의 제 45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의 투표가 시작됐다. 한국 시간으로 7일 오후 알래스카를 마지막으로 투표가 마무리되면 투표 결과도 곧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박빙의 접전 속에서도 오바마가 다소 우세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결과가 어찌되든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미국의 정·부통령 제도가 이번엔 어떤 인물들을 담을 지 자못 궁금하다. 기왕이면 한국에 더 도움이 될 인물로 채워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