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오늘] 러시아 2월 혁명 발발


1917년 제정러시아 수도 페트로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섬유공장. 영하 20도에 달하는 혹한 속에서 몇 시간째 식량 배급을 기다리던 군중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참다못한 공장노동자들은 '빵을 달라'며 분노를 터트렸다.
99년 전 오늘(3월8일) 러시아 '2월 혁명'의 봉화가 오르는 순간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현재 통용되는 그레고리력과는 달리 정교회에서 인정한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두 달력간 13일의 차이로 인해 혁명은 그레고리력 기준으로 3월에 일어났지만 율리우스력으론 2월이어서 2월 혁명으로 불린다.
당시 러시아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으로 인해 물자가 부족하고 물가는 마구 치솟던 상황이었다. 빵값은 물론 난방에 쓸 재료마저 살 수 없었다. 당장 굶어죽을 위기에 놓인 러시아인들은 도시 곳곳에서 파업과 시위를 일으킨 것이다. 당시 혁명에 참여한 이들은 여성과 노동자들이 중심이었다.
폭동은 순식간에 도시 전역으로 확산됐다. '빵을 달라'던 구호는 '차르 타도'로 바뀌었다. 시위하는 사람들을 진압하기 위해 군을 투입했지만 군인들은 발포명령을 거부하고 오히려 시위에 가담했다.
기본적인 생존권을 위해 시위하는 시민들에게 총구를 겨눌 명분이 군인들에겐 없었다. 결국 군 수뇌부는 러시아 시민들의 진압을 포기해야만 했다.
혁명 발발 5일 뒤 총 12만6700명의 병사가 혁명 편에 가담했다. 정부군의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면서 페트로그라드의 정부군은 최종적으로 무너진다. 혁명 이후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알렉산드르 케렌스키의 임시 정부가 수립된다.
혁명 이후 니콜라이 2세는 사퇴를 책임지고 황제직에서 퇴위한다. 니콜라이 2세는 동생인 미하일에게 황제직을 물려주려 했지만 노동자와 농민들은 '미하일 또한 니콜라이 2세와 다를 바 없다'면서 반대했다.
임시정부는 미하일에게 제위를 거부할 것을 권고했다. 미하일은 제의를 받아들였다. 미하일의 제위거부로 러시아에서 304년 동안 지속됐던 독일계 왕조인 '홀슈타인-로마노프 왕조'는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