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안된 한일 경제전쟁]표면적으론 "G20까지 韓이 징용 해결책 안내놨다"…배후엔 선거 앞두고 국내외 고립 돌파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놓고 한국에 경제보복이라는 초유의 강수를 꺼냈다. 반도체와 TV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3품목에 대해 한국만 콕 집어 수출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지난 1일 발표한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왜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끝난지 이틀 뒤 작정한 듯 보복카드를 꺼냈을까?
2일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보복조치는 이미 지난 5월 최종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내각 내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일본 기업을 비롯해 글로벌 공급망에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가 있었으나, 아베 총리와 측근이 이를 밀어부쳤다고도 설명했다. 이밖에 한국인 비자 제한 등도 검토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문제를 사전에 결정해놓고도 7월까지 발표를 미룬 것에 대해 2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G20 정상회의까지 만족하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아 (한일)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 역시 요미우리와의 인터뷰에서 "국가간 신뢰관계로 행해온 조치를 재검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면적으로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이후 양국간 갈등이 쌓여온 왔고, 일본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분쟁해결 절차인 '중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지만 한국이 별다른 반응이 없자 기다림 끝에 이런 조치를 내놨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악화된 한일관계 외에도 아베 총리가 처한 국내 정치적 상황이 더 큰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오는 21일 참의원선거를 앞두고 보수와 극우 지지 세력을 결집시키기 위한 카드로 쓸만한게 한국 도발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아사히신문도 "일본 정부의 이번 조치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한국을 향한) 의연한 대응을 강조하려는 목적이 있다"고 해석했다.
이번 참의원선거는 아베 총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전이다. 아베 총리의 숙원인 헌법 개정을 하려면 미국 의회로 치면 상원과 같은 역할의 참의원을 장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는 2차 대전 패전 후 헌법에 기재된 군대 보유와 전쟁을 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고쳐, 일본을 전쟁가능국으로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아베 총리는 내부적으로는 노후 자금 문제로, 외부적으로 외교 무성과로 궁지에 몰려있다. 내부에선 이달초 일본 금융청이 노후 자금으로 연금외에도 2000만엔(약 2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부 스스로 사회보장 수준이 미약하다는 걸 인정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다. 이 때문에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급락했다. NHK가 지난달 2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2주새 6%포인트나 하락한 42%를 기록했다. 여당인 자민당 지지율도 5.1%포인트 떨어진 31.6%를 나타냈다. 자민당 내에서는 "이 숫자는 선거를 앞두고 정말 위험하다"라는 위기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아베 총리는 외교 성과를 강조해왔다. 앞서 레이와 시대 개막 후 첫 국빈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해 친밀감 과시에 열을 올렸고, 지난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이를 극대화해 강조한다는 속셈이었다. G20 이후 오히려 '재팬패싱' 등 역효과만 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미·일 안보조약이 불공평하며, 무역문제를 두고도, "일본은 연간 수백만대의 자동차를 미국에 보내는데 우리는 고작 밀 같은 농산물을 보내는 게 고작"이라고 말하는 등 아베 총리를 당혹케 했다. 이어진 주말동안엔 남북미 정상이 최초로 판문점 회동을 하자, 일본 언론에서는 "아베가 또 모기장 밖에 놓였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베 총리의 트럼프와의 친밀 외교, 북한을 향한 비난 카드 모두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돼버린 셈이다. 지지율 역시 반등하지 못했다. 참다 못한 아베 총리가 참의원 선거 승리를 위한 반전 카드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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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간 갈등관계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확실치 않다. 일본이 3개품목 수출 규제 강화에 이어 한국을 아예 이러한 절차를 면제해주는 '화이트 국가'에서 올 8월 빼며 보복을 현실화할 경우 갈등은 커질 수 밖에 없다. 이번 광복절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기념사에서 일본에 어떤 메시지를 내놓느냐도 변수가 될 수 있다. 다만 일본 언론을 비롯해 기업들이 이번 조치를 두고 불만을 터뜨리고 있어 참의원 선거 이후 상황이 급진정될 수도 있다. 또 내년 도쿄 올림픽 개최를 앞둔 일본이 이 문제를 장기화 하지 않을 거란 예측도 나온다. 연간 3000만명의 해외관광객을 유치하는 일본은 내년 올림픽에는 이를 4000만명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인데, 일본 방문 해외관광객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한국과 갈등을 오래 끌면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일본이 한국인 비자 제한 문제도 검토했지만, 이를 발동시키지 않은 것도 올림픽 특수를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