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바닥 여기저기 시신…'1만원' 받으려다 85명 참변, 예멘의 비극[뉴스속오늘]

길바닥 여기저기 시신…'1만원' 받으려다 85명 참변, 예멘의 비극[뉴스속오늘]

이은 기자
2025.04.19 06:00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2023년 4월 19일(현지시간) 저녁 8시 20분쯤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열린 자선 행사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AFP PHOTO / Huthi Security Media Office
2023년 4월 19일(현지시간) 저녁 8시 20분쯤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열린 자선 행사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AFP PHOTO / Huthi Security Media Office

2023년 4월 19일(이하 현지시간). 예멘의 수도 사나에서 약 1만원의 구호금을 받기 위해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했다.

이날 사고는 후티(Houthi) 반군이 장악 중인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발생했다. 이곳에서는 지역 상인들이 1인당 약 5000예멘 리알(당시 한화 기준 약 1만2000원)의 구호금을 지급하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종교적 금식 기간인 '라마단' 종료를 기념하는 이슬람 최대 명절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를 앞두고 열린 자선 행사였다. 라마단 기간에는 금식과 함께 자선·기부가 권장되기 때문에 이웃에게 현금이나 음식을 제공하는 자선 행사가 자주 열린다.

2023년 4월 19일(현지시간) 저녁 8시 20분쯤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열린 자선 행사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AFP PHOTO / Huthi Security Media Office
2023년 4월 19일(현지시간) 저녁 8시 20분쯤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열린 자선 행사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AFP PHOTO / Huthi Security Media Office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고도 구호금을 받아 갈 수 있다는 말에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던 주민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한순간에 인파가 몰리면서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통제가 어려워지자 후티 반군은 통제를 위해 공중에 공포탄을 발사했다. 이 과정에서 총알이 전신주 변압기에 잘못 맞아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음에 놀란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현장을 떠나려고 했고,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대피하려던 사람들은 학교 뒷문 출입로로 몰렸고, 좁은 계단에서 사람들이 우르르 넘어지면서 압사 사고로 이어졌다.

2023년 4월 19일(현지시간) 저녁 8시 20분쯤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열린 한 자선 행사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알마시라 TV에서 촬영한 당시 현장 모습이다. /사진=AFP PHOTO / AL-MASIRAH TV
2023년 4월 19일(현지시간) 저녁 8시 20분쯤 예멘의 수도 사나의 한 학교에서 열린 한 자선 행사에 수백 명의 사람이 몰려 85명 이상이 압사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알마시라 TV에서 촬영한 당시 현장 모습이다. /사진=AFP PHOTO / AL-MASIRAH TV

당시 예멘 알마시라 TV가 촬영한 영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뒤엉킨 채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가려 애쓰는 현장 모습이 담겨 충격을 안겼다.

SNS(소셜미디어)에는 돈과 구호품을 나눠주는 가설무대 쪽으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구조를 요청하는 상황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겨우 빠져나간 길바닥 여기저기에는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고 주인을 잃은 신발 더미와 옷들이 쌓여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망자는 85명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고, 이 중 대부분이 여성과 어린이였다. 부상자는 332명으로 추산됐으며, 상당수가 중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폭력적 군중" 책임 돌린 반군…목격자들 "통제 못한 반군 탓"

후티 반군은 사고 책임을 행사 주최 측에 돌렸다.

모하메드 알 후티 반군 최고 정치국 위원은 사바 통신에 "이번 비극은 기본적으로 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행사 주최자들과 군중들의 폭력성이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후티 반군은 지방 정부와 사전 협의 없이 행사를 진행해 사고가 발생했다며 자선 행사를 주최한 상인 2명을 체포했다. 또한 이날 사고로 가족을 잃은 가족과 부상자에게는 각각 2000달러(한화 약 284만원), 400달러(약 57만 원)를 지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사고 목격자들은 후티 반군 소속 무장 병력이 군중 통제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이라 주장했다. 후티 반군 측이 사람들을 통제한다면서 허공을 향해 총을 쏴댄 것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다.

국제 인권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이번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던 비극"이라 규정하며, 철저한 진상 조사를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 중동·북아프리카 지역 부국장 그라치아 카레치아는 "이미 오랜 무력 분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예멘 국민들에게 또 하나의 잔혹한 타격"이라며 국제 사회의 관심을 호소했다.

2014년부터 이어진 내전…'생지옥' 예멘의 현실

예멘 압사 사고는 단순한 군중 사고가 아닌 예멘의 심각한 빈곤, 정치적 불안정 등 복합적인 위기를 보여주는 사건으로 평가됐다.

2014년부터 약 11년간 내전을 겪고 있는 예멘은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를 겪고 있다.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예멘은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486달러(한화 69만원)에 불과하며, 국민 30%가 인도적 지원이 필요한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예멘 내전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이 예멘 정부를 2014년 수도 사나에서 몰아낸 후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동맹군이 예멘 정부를 지원하고 나서면서 이슬람권의 두 맹주국의 대리전이 돼 여태 이어져 왔다.

오랜 내전에 굶주림과 전염병, 극단주의 세력의 횡포까지 겹쳐 예멘은 '생지옥'으로 불릴 만큼 심각한 상황에 놓였다.

18일(현지시간) 예멘 서부 홍해 연안의 라스 이사 항구가 미국의 공습으로 불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알마시라TV
18일(현지시간) 예멘 서부 홍해 연안의 라스 이사 항구가 미국의 공습으로 불타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알마시라TV

2022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후티 반군 간의 휴전과 평화 협상이 있었지만, 전면적인 평화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지난 18일엔 후티 반군이 운용 중인 예멘 서부 홍해 연안의 라스 이사 항구가 미국의 공습을 받기도 했다. 이곳은 후티 반군이 운용 중인 석유 항구로 대형 유류 탱크와 정유시설 등이 있다.

미군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테러리스트의 연료 공급원을 제거하고 불법 수익을 빼앗기 위한 조치"라며 "후티 정복의 멍에를 벗어 던지고 평화롭게 살고 싶어 하는 예멘 국민에게 해를 끼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번 공습으로 발생한 사상자 확인을 거부했다.

후티 반군은 2023년 가자지구 전쟁 발발 이후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홍해를 지나는 이스라엘과 서방의 선박을 공격해 왔다. 이에 미국은 지난 3월 후티 반군을 '해외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고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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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기자

패션·뷰티·라이프스타일·연예 분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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