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위기에 흔들리는 유엔…"핵심 파트너 국가와 전략적 파트너십 중요해져"

재정 위기에 흔들리는 유엔…"핵심 파트너 국가와 전략적 파트너십 중요해져"

최성근 전문위원, 김상희 기자
2026.02.08 06:00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 유엔 재정 위기

[편집자주] 트럼프 2기 출범, AI의 발달, 기후변화 등 글로벌 사회의 불확실성이 커졌습니다. 는 매주 일요일 오전, 깊이 있는 시각과 예리한 분석으로 불확실성 커진 세상을 헤쳐나갈 지혜를 전달합니다.
(뉴욕 로이터=뉴스1) 이창규 기자 =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9월 23일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9.23./뉴스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뉴욕 로이터=뉴스1) 이창규 기자
(뉴욕 로이터=뉴스1) 이창규 기자 =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9월 23일 유엔 본부에서 열린 제80차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2025.9.23./뉴스1 ⓒ 로이터=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뉴욕 로이터=뉴스1) 이창규 기자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질서를 상징해 온 국제연합(UN, 이하 유엔)이 구조적 위기에 직면했다는 평가가 확산하고 있다. 재정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유엔이 기존과 같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선데이 모닝 인사이트>는 유엔이 위기에 처한 배경을 짚어보고 향후 전개 시나리오를 전망해 봤다.

美 지원 중단으로 재정 위기…방만한 경영·美 전략 변화 등 원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30일 196개 회원국 대사에게 보낸 서한에서 "회원국이 납부하지 않은 분담금으로 인해 조직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2025년 말 기준 유엔의 미납 분담금은 약 15억 7000만 달러(약 2조 2900억 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올해 7월에는 보유 현금이 고갈돼 뉴욕 유엔 본부 폐쇄는 물론 9월로 예정된 유엔 총회 취소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유엔 재정난의 가장 큰 원인은 최대 기여국인 미국의 분담금 납부 중단이다. 미국은 유엔 전체 정규예산의 약 22%를 부담해 왔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주요 유엔 기구 탈퇴와 자금 지원 중단 조치를 단행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의 체납액은 정규 예산과 평화유지 활동을 합쳐 약 40억 달러(약 5조 8400억 원)를 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재정 지원 중단의 표면적 배경으로는 유엔 조직의 비효율성과 방만한 경영 구조가 꼽힌다. 유엔은 현재 수십 개의 전문·산하기구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 분산된 연구기관과 신규 프로그램도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 특히 기후·젠더·디지털·청년 등 이슈별 섹터가 과도하게 세분화되면서 예산 집행은 파편화됐고, 예산 부족 속에서도 행정비용과 고위직 비대화 역시 지속됐다는 지적이다. 최근 미국 백악관은 유엔 산하 기구를 포함한 66개 국제기구 탈퇴를 발표하며 "미국 납세자의 세금이 비효율적이거나 비효과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다루는 기구에 더 이상 사용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더 근본적 배경으로 미국의 전략적 인식 변화를 지목한다. 2기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은 국제기구와 다자주의를 '유지해야 할 질서'가 아니라 '국익에 부합할 경우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수단'으로 재정의하고 있다는 평가다. 유엔이 주도해 온 국제 규범, 자유주의 가치, 글로벌 리더십은 더 이상 미국의 이익에 기여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책 자율성을 제약하고 비용만 증가시킨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이성원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은 다자주의 질서를 지탱해 온 유엔과 같은 국제기구에 대한 개입과 약속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철저히 현실적인 국익 계산을 우선하고 있다"며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개입하지만, 국익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판단되면 냉정하게 외면하는 것이 트럼프 행정부의 '유연한 현실주의' 외교 기조"라고 분석했다.

(크파르킬라 AFP=뉴스1) 김지완 기자 =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와 국경을 맞댄 레바논 남부의 크파르 킬라 마을에서 유엔 레바논 임시군(UNIFIL) 기동예비군 사령관 아르노 드 콩시 대령(왼쪽)과 한 장병이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2025.08.27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크파르킬라 AFP=뉴스1) 김지완 기자
(크파르킬라 AFP=뉴스1) 김지완 기자 = 27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와 국경을 맞댄 레바논 남부의 크파르 킬라 마을에서 유엔 레바논 임시군(UNIFIL) 기동예비군 사령관 아르노 드 콩시 대령(왼쪽)과 한 장병이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2025.08.27 ⓒ AFP=뉴스1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크파르킬라 AFP=뉴스1) 김지완 기자

재정 위기 지속 시…체제관리형 위기·만성 기능 마비·질서 전환 시나리오 전망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와의 통화에서 "(분담금 미납 국가) 모두에게 돈을 내도록 할 것", "유엔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에 뉴욕과 미국에서 철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분담금 미납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회피하기도 했다.

미국의 분담금 납부 재개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미국의 지원이 계속해서 중단될 경우 유엔 체제의 향방을 크게 세 가지로 전망한다. 이들 시나리오는 상호 배타적이라기보다는 중첩되거나 단계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먼저 연착륙, 즉 '관리형 위기' 시나리오다. 이 경우 유엔은 급격한 붕괴를 피하는 대신 스스로의 역할과 범위를 대폭 축소하는 방식으로 생존을 모색한다. 일부 예산 삭감과 조직 구조조정, 현금흐름 규정 손질이 이뤄지고, 주요국 분담금도 제한적인 수준에서 정상화된다. 지난해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창설 80주년을 맞아 불필요한 임무 폐지, 조직구조 개편, 중복사업 통폐합을 통해 20%의 예산을 감축하는 '유엔80 이니셔티브'를 추진했다. 이는 과거와 같은 전면적 정상화보다는 유엔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가깝다.

이 경우 유엔은 더 이상 기존처럼 광범위한 글로벌 이슈를 다루기 어렵다. 유엔 총회와 안전보장이사회, 사무국 등 핵심 조정 기능을 가진 기구는 유지되는 반면, 기후·여성·인권 등 범지구적 의제를 다루는 기구와 프로그램은 축소가 불가피하다. 나아가 핵심 기여국의 필요에 따라 전쟁 억제나 제한적 중재 플랫폼 역할만 수행하는 '기능 축소형 유엔'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는 만성적 마비 시나리오다. 분담금 미납 문제가 해소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면서 유엔의 기능 정지가 구조화되는 경우다. 이 경우 평화유지군, 인도주의 지원, 행정 기능은 사안과 지역에 따라 선별적으로 중단된다. 현재 수행 중인 콩고민주공화국, 남수단, 소말리아 등지에서의 평화유지 임무도 단계적으로 철수할 가능성이 크며, 세계식량계획(WFP)나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인도주의 사업들도 지속하기 어렵게 된다.

이에 따라 주권 침해나 불법 침공에 대한 유엔 차원의 대응은 사실상 무력화되고 국가 간 분쟁과 테러 위험은 확산될 수 있다. 특히 취약국을 중심으로 인도주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글로벌 차원의 불안정성이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다.

유엔 체제가 대체되는 '질서 전환' 시나리오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유엔의 기능 마비가 장기화되면서 체제에 대한 신뢰가 붕괴되고 주요국들이 유엔을 대체하는 협의체나 플랫폼을 상시화 하는 경우다. 유엔이라는 명칭과 상징성은 유지되겠지만 실질적인 기능과 영향력은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국제 현안은 개별 국가나 소규모 연합체를 중심으로 관리되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가자지구 평화와 재건을 명분으로 19개국이 참여하는 '평화위원회'를 출범시키며 유엔을 대체하는 미국 중심의 새로운 국제 협의체 구성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유엔을 대체하는 국제기구가 새롭게 제도화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 유엔 주도의 '보편 규범'은 약화되고 진영별 이해관계에 기초한 '블록 규범'이 부상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 규범과 국제법은 더 이상 전 세계에 동일하게 적용되기 어렵고 특정 진영이나 협의체 내부에서만 유효한 규칙으로 작동하게 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상하이협력기구(SCO)가 지역 안보 질서를 독립적으로 관장하고, 주요 7개국(G7)과 브릭스(BRICS) 역시 통상·환경·기술 규범을 각자의 기준으로 설정하는 '규범의 파편화'도 일어나게 된다.

김동규 시사문예지 파도 편집장은 "유엔 체제는 이제 전쟁 억제라는 본연의 기능조차 수행하기 어려운 상태로 전락했고 결국 형식적인 존재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은 다자외교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호주, 필리핀 등 핵심 파트너 국가들과의 양자 관계를 보다 전략적으로 심화시키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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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희 기자

안녕하세요. 혁신전략팀 김상희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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