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흔히들 민간기업들 중 가장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갖고 있는 곳 중 하나로 꼽힙니다. 고객의 자산을 위탁받아 관리하는 곳이기에 최대한 안전하고 보수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영업문화의 영향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은행의 폐쇄적인 조직문화를 이야기하면서 지적되는 것이 '순혈주의'입니다. '우리 은행 출신이 아니면 안된다' 또는 '우리 은행 출신을 우대한다'는 이른바 내 식구 중심의 사고방식입니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어온 은행권에서 이제는 순혈주의도 구시대의 유물이 돼 가는 것 같습니다.
하나금융은 지난 13일 이성규 코레이 최고지식책임자를 지주회사의 부사장에 선임했습니다. 이 부사장은 바로 지난해말까지 국민은행의 부행장이었던 인물입니다. 올초 외환은행 인수를 놓고 치열한 싸움을 벌였던 하나금융이 국민은행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인물을 영입한 겁니다. 그것도 그룹 전체의 재무관리와 전략, 리스크관리 등을 담당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에 앉혔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현재 하나은행의 정보전략 책임자(CIO)인 조봉한 상무도 국민은행에서 차세대뱅킹시스템 책임자로 근무했던 인물입니다.
반대로 국민은행은 지난해말 하나은행의 CIO였던 송갑조씨를 노조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CIO로 영입했습니다. 강정원 행장이 취임 직후 가장 심혈을 기울였던 은행의 여신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최동수 부행장도 하나은행 출신입니다. 최 부행장은 2003년 SK사태가 터졌을 당시 잠시이지만 하나은행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송 부행장과 최 부행장은 강 행장과 같은 직장에 근무했던 경험도 반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더라도 두 은행의 임원 교류를 보면 '스와핑'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정도입니다. 그만큼 은행권의 조직문화에서 '순혈주의'의 힘이 약화되고 그 자리를 '능력'이라는 기준이 채워가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한 때는 나와 경쟁을 벌였던 적(敵)일지라도 능력이 있다면 언제든지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얘기죠.
과도하게 외부에서 임원들을 영입할 경우 내부 직원들의 승진기회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에 직원들의 사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능력'이 인사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우리 은행들의 경쟁력 향상에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