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공거위'라고 들어보셨나요? 못 들어보셨다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시겠는지요?
고개를 갸우뚱하실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약자입니다. 지금은 '공정위'라는 약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한때는 '공거위'였다고 하는군요.
최근 기자간담회를 가졌던 한이헌 기술보증기금 이사장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 이사장은 1993년 경제기획원 산하에 있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위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취임했을 당시 공정위의 약자는 '공거위'였다고 하더군요. 이름의 첫 글자와 가운데 글자를 하나씩 따서 쓰는 약칭의 원칙에 충실했던 거죠. 그러다 보니 '배가 텅빈 거위'(한 이사장의 표현입니다)도 아니고 도대체 약칭만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조직인지 알 수 없게 돼 있었다는군요.
한 이사장은 약칭이 그 조직의 정체성을 분명히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각 언론사에 협조공문을 보내는 등 약칭 변경 작업을 시작해 결국 '공정위'라는 이름을 정착시켰다고 하더군요.
한 이사장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자신이 이끌고 있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의 약칭 때문입니다. 그는 기술신용보증기금을 부를 때 '신용'이라는 단어를 빼고 '기술보증기금'으로 불러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약칭도 '기신보'가 아닌 그냥 '기보'로 해달라고 덧붙이더군요.
그가 법에 명시된 명칭인 '기술신용보증기금'을 굳이 기술보증기금으로 불러달라는 이유는 바로 정체성 때문입니다.
기보는 당초 기술을 자산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에 대한 보증, 이른바 기술보증을 전담하기 위해 1989년 신용보증기금(신보)에 분리됐습니다. 하지만 기보는 신보와 차별성이 없이 중복된 업무를 계속해 오다 급기야 지난해 기금의 존폐 위기에까지 몰렸습니다. 결국 기보는 살아남기 위해 신보와 중복되는 일반 신용보증 업무를 신보에 이관하고 기술보증에만 주력하기 시작했습니다.
한해동안 기술보증이라는 기보만의 특화된 영역 찾기 노력은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됩니다. 실제로 기보가 올해 신규 공급한 보증 중 92.1%에 달하는 2조원 정도가 전부 기술혁신기업에 지원됐습니다. 이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조직 안팎에 옛날의 신용보증적 시각에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게 한 이사장의 설명입니다.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신용을 빼고 싶다"는 한 이사장의 바람은 "앞으로 정말 기술에만 올인하고 싶다"는 그의 다짐이 담겨 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