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한 저축은행이 개최한 해외 워크숍에서 금융원로 한분을 만났습니다. 현재 한국FPSB협회장으로 있는 윤병철 회장인데요. 그는 1960년 농업은행으로 금융계에 발을 디딘 후 한국투자금융, 하나은행, 우리금융지주의 회장을 역임하며 굵직굵직한 금융 격변기의 돛줄을 잡아왔습니다.
워크숍 강사로 참석한 윤 회장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었습니다. 저축은행이 나아갈 방향을 그간 금융계에서 느껴온 시류와 결합해 설명하며 참석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습니다. 강연은 사회흐름이 금융환경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진행됐는데 가장 재밌던 부분은 과거완료형인 장영자 사건과 현재진행형인 정보기술(IT)의 발전을 제도 변화와 연결한 것이었습니다.
"수천억원으로 사금융시장을 주물렀다는 장영자 사건은 자체로는 대형 사기사건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아이러니하게도 금융권 전반에 많은 제도 개선을 이끌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변화는 발전의 본래 형태인데 틈새에서 예상치 않게 튀어나오기도 합니다. IT 발전도 금융제도의 변화를 이끕니다. 통신, 인터넷이 발전하면 정보의 비대칭이 해소되면서 시장기능이 촉진되지요."
따라서 금융계 종사자들은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향으로 규제 변화가 이뤄진다는 자세를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새로운 사업아이템이 있어도 미개선된 규제 때문에 실현하지 못해 답답하다는 저축은행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저축은행은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것으로 자부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단자사인 한국투자금융의 은행업 라이선스를 이끌어 하나금융의 초석을 만든 것입니다. 단기간에 이뤄진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8년간 추진한 것입니다. 법이나 규제는 시대 변화에 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벽에 부딪친다고 해도 포기하지 말고 계속 두드려야 합니다. 은행사업에서도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내년부터 수표 발행, 직불카드 업무 등이 허용되는 저축은행업계에 윤 회장의 조언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늘 그렇듯 신사업 도입에는 세부규정 미비, 현실과의 충돌, 제도의 역개선 효과 등이 따라옵니다. 새 업무가 공염불이나 다름없다는 불만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중은행 수준으로 성장하는 저축은행'이 되기 위해서는 힘들더라도 넘어야 할 산이겠지요. 업계의 파이팅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