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미FTA, 반덤핑 해결 첫 걸음

[기고]한·미FTA, 반덤핑 해결 첫 걸음

여성철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부원장
2007.04.16 12:20

이번 한·미 FTA 협상에 있어 무역구제 부문은 수출업계의 중요한 관심사였음은 물론 정부에서도 가장 정성을 들인 협상과제의 하나였다. 이만큼 협상결과를 놓고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우리 무역업계는 지난 84년 한국산 앨범에 대한 미국의 갑작스런 반덤핑 조치로 인해 수출길이 막힌 앨범들이 길가로, 지하철로 쏟아져 나온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 25년간 미국의 계속된 반덤핑 관세 및 상계관세 등은 대미수출의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혔다. 이 때문에 이번 협상을 통해 뭐가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협상단은 그동안 문제점으로 건의된 모든 사항을 협상안건으로 상정해 미국측과 줄다리기를 해 왔다. 물론 이번 무역구제 부문 협상에서 수출업계가 개선을 요구한 사항들 중 반영되지 못한 것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흡족치 못한 감이 드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무역구제 협상이 미진해 대미수출 확대는 공염불이라는 일각의 평가는 사실과 괴리가 크다. 이번 협상을 통해 미국 측으로부터 얻어낸 다음 몇가지의 성과는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 정도만으로도 수출업계가 미국의 수입규제에 대응하는데 큰 숨통이 트이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첫째 반덤핑 및 상계관세 조사개시 전 사전협의 조항을 명문화한 것은 미국측의 일방적인 조사신청 및 개시를 사전에 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출업계가 입게 될 막대한 물적·인적 피해를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실제로 사전조사가 일단 실시되면 수출이 당장 막히는 것은 물론 변호사 등 법적 대응비용만도 건당 평균 1억1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둘째 미국 상무성이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는 '가격인상 약속' 및 '물량제한 합의'를 이번 협상에서 이끌어 낸 것도 큰 성과다. 예비판정 이후라도 수출자와 수입국 생산자간에 가격인상 약속을 통해 조사를 종결하면 페널티를 최소화하면서 수출을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셋째, 한·미 FTA로 인한 관세철폐로 수입이 급증할 경우,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관세를 인상할 수 있는 '양자 세이프가드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FTA 발효 후 급격한 수입증가로 인한 산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확보하게 됐다. 미국의 다자 세이프가드 발동시 우리 수출액이 크지 않아 미국 산업피해의 주된 원인이 아닐 경우에는 다자 세이프가드에서 우리가 제외될 수 있는 가능성도 확보했다.

넷째 무역구제위원회의 설치에 합의한 것도 큰 성과다. 미국이 여러나라와 FTA를 체결했지만 이같은 협의기구를 설치키로 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무역구제위원회는 조사개시 전 사전협의 및 가격·물량 합의 조항 등의 이행여부를 감독하며 양국간 무역구제 법령과 관행에 관해 협의하는 기구다. 무역업계는 동 위원회의 설치만으로도 미국의 반덤핑 제소 남용을 억제할 수 있는 든든한 후견인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의회는 미 정부에 대해 다른 나라와 통상협상을 하면서 무역구제 제도를 약화시키는 내용을 포함해서는 안된다는 지침을 내린 바 있기 때문에 미국측 협상단은 원래 무역구제 부문에 있어 극히 제한된 재량권만을 부여받은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FTA 협상에서 무역구제 분과를 별도 설치키로 했던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본다.

일각에서 가장 아쉬워하는 ‘비합산 조치’나 ‘제로잉’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은 사실 예상했던 일이다. 미국을 상대로 오히려 ‘비합산 조치’를 강력히 제기하면서 밀어붙이는 협상전략을 벌인 결과, 그나마 성과를 얻어낼 수 있었지 않았느냐는 느낌이 든다. 그동안 가장 심각했던 문제가 미 조사당국의 재량권 남용이었던 점을 생각할 때 이번 협상을 통해 이들을 공식채널로 끌어 들이는데 성공한 것만도 높이 평가할만 하며 무역업계도 크게 환영하고 있다. 또한 제로잉은 미국이 WTO에서 패소함에 따라 머지않아 개선될 것이 확실한 상황이다.

모든 것을 얻어내는 것은 협상이 아니다. 많은 것을 얻어낸 큰 협상의 틀 속에서 볼 때 무역구제 부문 협상은 아쉬운 가운데 우리 수출업계의 가장 큰 애로사항인 반덤핑 제소 문제의 실마리를 푸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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