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전쟁이 28일째로 접어들며 장기화 국면에 진입하자 정부의 에너지 대응 수위도 '민생 안정'에서 '강제적 수급 통제'로 급격히 선회하고 있다. 초기 대책이 국민 실생활 불편 해소에 방점을 뒀다면 이제는 의무·강제적 수요 관리를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27일 1차 고시 때보다 리터(ℓ)당 210원을 인상한 2차 석유최고가격을 고시했다. 이에 따라 △휘발유 1934원 △경유 1923원 △등유 1530원이 적용된다.
전쟁 발발 직후 유가가 폭등하자 정부가 꺼낸 첫 번째 카드는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석유최고가격 지정'이었다. 당시 ℓ당 2000원 선을 돌파하던 휘발윳값을 1700~1800원대로 묶어두며 시장 불안을 잠재우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2주 만에 재지정된 2차 가격은 오름폭이 가파르다. 주유소 현장 판매가격은 다시 2000원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국제 유가 상승분을 반영했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 설명이지만 다른 의도도 있다. 정부 관계자는 "무한정 값싼 가격으로 에너지를 공급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가격 인상을 통해 자연스러운 소비 감축을 유도하는 '수요관리'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의무적 차량 5부제 시행은 본격적인 수요 관리의 서막이다. 정부는 적용 대상 차량 150만 대를 통해 일일 약 3000배럴의 석유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 국내 일간 소비량 200만~290만 배럴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공공의 선제적 감축 후 민간 확대'라는 통상적인 위기 대응 절차를 고려하면 민간 의무 시행도 결정 시기만 남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량 수요처에 대한 압박도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이미 에너지 다소비 50개 기업을 대상으로 '에너지 절감 계획' 수립과 이행 보고를 요청했다. 또한 발전용 LNG 소비를 줄이기 위해 석탄화력발전 제한을 해제하고 원전 가동률을 끌어올리는 등 에너지 믹스 재편을 시작했다.
상황이 악화될 경우 정부는 백화점·대형마트·유흥업소 등 에너지 다소비 시설의 영업시간 단축과 조명 강제 소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현재는 권고 수준인 경관 조명 사용 등이 '강제 제한 고시'로 전환되면 위반 시 즉각적인 과태료가 부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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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강력한 카드는 산업용 에너지 사용 할당제와 강제 절전이다. 전년 동기 대비 사용량을 강제 삭감하도록 명령하거나 전력 수급 한계 시 사전 계약된 산업체 설비를 강제로 멈추는 직접부하제어(DLC)가 검토 대상이다.
만약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이어지는 극단적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의 '유류 구매권' 제도 도입까지 거론된다. 개인이나 차량당 주유 가능 용량을 제한하는 사실상의 '배급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