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소방조치'에 증권사 신용융자 제한…시장 자율기능 실종
시중(증시) 유동성을 놓고 청와대와 정부, 금융회사들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정부는 현 수준의 유동성을 '과열'로 진단하고 열을 식히겠다며 융단폭격식 조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우증권 등을 비롯해 몇몇 증권사들이 발빠르게 정부 시책에 적극 호응하고 나섰습니다. 신용융자 잔액이 '임계점'을 넘었다며 신용융자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증권사들도 이에 대해 겉으로는 "필요한 조치"라고 수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상당수 증권사들의 속내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인위적인 시장개입은 상승세를 해칠 수 있고, 자칫 시장의 자율적인 펀더멘털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개인들이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빚을 내 주식투자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며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예상했던 대로 정부의 신속한 '소방조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증권사들을 종용해 신용융자를 축소·중단하는 쪽으로 내몰고 있고, 한은은 총액대출한도를 축소해 증시유입 자금을 줄일 작정입니다. 재경부는 느닷없이 "주가상승 폭이 기업실적이나 경기회복 속도에 비해 너무 빠르다"며 과열 진단을 공식화했습니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특히 시장정책은 '선제 대응'을 생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IMF 체제를 겪은 터라 더욱 그렇습니다. 잠재된 폭탄의 뇌관을 미리 해체해야 하는 것이죠.
하지만 지금 불붙고 있는 증시의 속도와 방향성을 놓고 '정답'은 아직 없습니다. '근거없이 커져가는 기대심리'와 '제어하지 못하는 과속'에 빠져 들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또는 일부에서 제기하듯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과도기'를 거치고 있고 새로운 판단잣대를 세워야 할 시기일 수도 있죠.
최근 진행되는 청와대, 금융당국, 증권사들의 모습을 보면 그 어디에도 시장자율 기능에 대한 배려는 보이지 않습니다. 시장자율 기능의 정상화와 복원은 IMF 이후 시장체질 개선의 핵심 과제였습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시장 자체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충격을 흡수해 가는 체질로 가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지금 나타나는 현상은 △청와대의 '어렴풋한' 확신 △금융당국의 '신속한' 임무 수행 △증권사의 '즉각적인 코드맞추기' 등입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답답함이 느껴집니다.
재경부는 과열 진단과 관련해 "방향은 올바른데, 속도가 너무 빨라 문제"라고 했는데요. 혹시 재경부를 비롯해 정부의 '속도계'가 너무 낡은 제품이어서 달라진 시장 속도를 무턱대고 과속으로 진단하는 게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문제는 시장을 제멋대로 파헤칠 경우 시장자율 기능과 펀더멘털의 순조로운 진행을 뿌리째 해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이런 실수를 또다시 되풀이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