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인사에서 한나라당 빅3, 다시 범여권의 유력주자로

드라마틱하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사진)의 인생은 어떤 시대의 프리즘에 비추느냐에 따라 상반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60~70 년대는 수배와 도피생활로 점철됐다. 서울대 정치학과 65학번인 그는 고교(경기고)와 대학 동기인 '거물' 김근태와 함께 운동권으로 이름을 날렸다. 빈민운동을 위해 청계천 판자촌으로, 노동운동을 위해 구로공단 철공소에도 들어갔다.
'명성'의 그늘엔 희생도 따랐다. 수배중엔 약국을 하던 아내와 첫 딸(손정원)을 제대로 만날 수 없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못했다. 결국 어머니 장례식에서 체포된다.
비교적 정치색이 안 보이는 기간이 80년대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장을 지냈다. 인하대를 거쳐 서강대 교수가 됐다.
극적인 변화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93년부터다. 마지막 강의에서 "내가 무엇이 되는 지보다 어떤 일을 하는 지 봐달라"며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민자당 소속으로 14대 국회에 입성했다.
이후 신한국당, 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집권당 시절엔 당 대변인과 복지부장관을 지냈다. 16대 국회까지 내리 3선한 뒤엔 경기도지사를 거쳐 한나라당 대선후보 '빅3'로 거론됐다.
또 한 번의 변신은 2007년. 2006년 100일동안의 민심대장정에도 불구, 지지율이 한계에 부딪히자 지난 3월 탈당했다. 최근 범여권 합류를 선언하고 유력 주자로 부상하고 있다. 그 과정에 '오랜 벗' 김근태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경기 시흥(61세)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 영국 옥스퍼드 정치학박사 ▲인하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4~16대 국회의원 ▲보건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