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대장정 나선 손학규 "땀속에서 배운다"

민심대장정 나선 손학규 "땀속에서 배운다"

박재범 기자
2006.08.10 08:54

'100일 민심대장정' 손학규 前경기지사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린 8월8일. 경상북도 김천을 찾았다. '100일간의 민심대장정'을 진행중인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6월30일 지사 임기를 마친 후 배낭 하나 둘러메고 민심의 바다에 뛰어든 지 벌써 40일째. '정치적 쇼' '이벤트성 '대선 전략' 등의 비아냥은 어느새 수그러들었다. 대신 '진정성' '덥수룩한 수염' 등이 그의 이미지가 됐다. 여론도 마냥 호의적이다.

과연 그럴까. 궁금했다. 그래서 철저히 지켜만 봤다. 일과 후 짧은 인터뷰도 했지만 공식 일정 중에는 그의 '탐방'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3자로서 감히 '관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변화 1, 소통을 위한 노력

하루중 가장 더운 오후 3시. 김천 직지농협 농산물 집하장이 부쩍거린다. 오전 내내 딴 포도를 싣고 나온 농부의 차량, 포도를 넘겨받아 전국으로 싣고 떠날 운반 차량이 바삐 오간다.

그 사이에서 손 전지사는 포도를 옮겨 싣느라 분주하다. "한 박스씩만 옮기시죠" 농민의 걱정(?)에 "세 상자도 괜찮습니다"라고 받아치는 여유도 보인다. 미심쩍은 듯 쳐다보던 화물차주와도 호흡이 척척 맞는다.

"이제, 그만 하시죠" 직지조합장이 나서지만 들은 척도 안 한다. 새참 국수와 막걸리를 먹은 뒤에도 벌떡 일어서더니 포도상자를 나르러 간다. 카메라 플래시가 사라지면 손을 털고 악수한 뒤 떠나는 정치인을 기억했던 현지 농민들이 당혹해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루 운임이 얼마나 됩니까" "뭐 좀 됩니다" 두 트럭 분량의 포도 상자를 옮긴 뒤 숨을 고른 손 전 지사가 한번 더 묻는다. "이렇게 싣고 서울 한번 가면 얼마에요" 차주가 멋쩍게 웃으며 "40만원 정도 됩니다"라고 답한다.

이후 선풍기 바람에 땀을 식히며 농산물 유통 문제, 화물 차량의 지입차주 문제, 경유 등 기름값 문제 등에 대한 자연스런 대화가 오간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지만 진심을 갖고 함께 일하고 땀 흘리면 마음을 열게 되죠. 운임이 얼마냐고 그냥 물으면 절대 대답 안 해 줍니다". 손 전지사가 현장에서 얻은 노하우다.

#변화 2, 소통이 되다

열린 마음은 쉽게 닫히지 않는다. 농민들은 '이때다' 싶은 듯 답답함을 토로한다. 올해 포도 농사가 잘 된 턱에 다른 지역에 비해 김천 농민들의 얼굴은 밝은 편이지만 하소연은 끝이 없다.

선한 웃음을 짓던 손 전 지사의 얼굴도 굳어진다. 이곳에서만 들은 소리가 아닌 터라 더 답답하다. '희망'보다 '좌절'의 외침이 생각보다 크다. 구체적 요구도 봇물처럼 쏟아진다.

"정부가 면세유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는 데 그거 없애면 거봉 농사 못 짓습니다" "대형 할인매장에서 할인 이벤트를 하면서 생산자에게 부담을 지우다보니 농민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심히 듣던 손 전지사의 눈꼬리가 올라가더니 이내 뒷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들곤 받아적는다. "1년 면세유 사용 금액이 얼마나 됩니까" 등 추가 질문도 던진다.

"비료 값이 많이 올라 부담이라던데…" 먼저 주제를 던지기도 한다. 40일동안 전국 곳곳을 다니며 얻은 소중한 경험에서는 나오는 질문이다.. 양쪽의 대화가 자연스럽다.

손 전 지사와 동행하고 있는 이들은 "처음부터 자연스럽지는 않았다"고 귀띔한다. 민심대장정 초반부에는 여전히 도지사였단다. 민심을 '듣기 위해' 나섰다지만 실천이 담보되지 않았다.

2주쯤 지난 뒤 몸이 민심쪽으로 던져졌고 민심 청취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마냥 듣기만 했다. '대화'가 아닌 '일방적 청취'만 존재했다. 한 주 후 달라졌다. 민심을 '듣고 말하는' 능력이 생긴 것. '소통(communication)'이 된 셈이다.

#변화 3, 소통 이후…

김천 시내를 거닐 때 그를 알아보는 이들의 거의 없었다. "노숙자처럼 생긴 사람을 장관, 국회의원, 도지사를 지낸 인물로 생각이나 하겠나"

손 전 지사를 택시 앞자리에 태우고 10분동안 대화를 나눈 택시기사도 손 전지사 스스로 "손학규입니다"라고 말한 뒤에야 그를 알아챘을 정도다.

8일 오전 김천평화성당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야곱의 집'에서 배급 봉사를 할 때 "배급을 받아야 할 사람이 배급을 하네"라는 우스개 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래서 편히 다닌다. 기차역, 버스 터미널 등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지날 때도 먼저 나서지 않는다. 얼굴 알리는 게 이번 대장정의 목적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그래도 먼저 알아채 인사를 하는 이들은 반갑게 대한다.

그렇다면 민심대장정의 중반부를 달리는 그의 최종 목표지점은 어딜까. 무엇을 위한 '소통'일까. 김천 주민들과의 저녁 간담회 자리에서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걸쭉한 막걸리로 목을 축인 그는 저녁 자리가 흥에 겨워지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즉흥 연설이었다.

그는 '생활 정치'를 꺼냈다. "국회, 정당 중심의 정치, 여의도 정치 대신 지역과 계층별 사람들을 만나는 속에 정치가 있다"고 했다. "진정한 지도는 생활 현장을 이해해야 한다"고 힘을 줬다. 어렵지만 삶을 이해해 주는 지도자가 있으면 함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도 했다.

주민들도 고객을 끄덕였다. 생활 현장을 이해한 사람에 대한 '동의'의 의미였다. '대선'이니 '정계 개편'이니 등의 질문은 우문(愚問)이었다. 손 전지사는 연설 말미 농민을 걱정하며 측우기 등을 만들었던 '세종대왕'을 언급했다. 끝도 "사람은 못 봐도 하늘은 본다"는 말로 맺었다.

나름의 현답(賢答)이었다. 귀경 길 기차안에서 그가 준 명함을 다시 한번 꺼내봤다. 그의 이메일 주소를 보곤 무엇을 위한 '소통'인지 명확해졌다. 그의 이메일 주소는 '[email protecte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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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범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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