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세기 이후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시작해 오늘의 미국에 이르기까지 세계를 제패한 나라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세계화 시대를 맞아 지구촌 모든 나라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내용을 다룬 '대굴국기'라는 프로그램이 지난해 교육방송을 통해 방영됐다. 중국 중앙방송인 CCTV가 기획한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편 '21세기 대국의 조건'에서 모든 학자가 꼽은 과거 대국의 성공 조건은 그 나라의 문화였다. 아울러 글로벌시장 선점을 위한 교육과 과학기술이 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제시됐다.
이 자리를 빌어 문화와 교육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비록 교육 효율성은 떨어져도 우리 학생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올림피아드 등 여러 국제적인 학업 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 문화 역시 독창성과 풍부한 역사, 잠재력 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국이 되기 위한 조건 중 문화와 교육이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요소는 과학기술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오래 지속됐음에도 그간 한국은 매우 적극적으로 과학기술에 투자해왔다.
실제로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 규모는 선진국인 프랑스, 영국 등과 함께 전세계 연구개발(R&D) 투자의 4% 정도를 차지한다. 또 과학기술 인력은 어느 나라보다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과학기술 투자도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갖췄다고 볼 때 우리에게 한 가지 부족한 점은 바로 과학기술서비스 분야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 공식적인 산업 분류로 통용되고 있지는 않지만 과학기술서비스는 현대 과학기술 시대에서 필수적이다. 과학기술 연구에서 연구시험 장비의 활용, 방대한 과학기술 정보의 효과적인 분석 등 지원 부문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과학기술 분야에서 경쟁은 첨단 연구시험 장비와 빠른 정보 처리를 중심으로 하는 속도(스피드)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처럼 우수한 과학자 1명에게 의존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우수한 연구팀과 고가의 최신 연구장비, 다양한 실험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자동화 시스템, 빠른 컴퓨터 검색 및 분석 능력이 이를 대체한지 오래다. 이제는 우수한 과학자와 효과적인 과학기술서비스라는 두 개의 축이 현재와 미래의 과학기술 성공을 좌우하는 요소가 됐다.
2000년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발표했던 인간유전자 정보 초안, 이른바 '휴먼 게놈 프로젝트'는 오늘날 과학 기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 15개국은 1990년에 향후 15년간 30억 달러를 투자해 30억 쌍의 인간 DNA 염기서열을 밝히기로 했다. 이를 통해 인간 생로병사의 비밀을 찾는 단초를 마련하겠다는 의도였다.
그런데 1998년에 300대의 자동화된 DNA 암호해독장치와 슈퍼컴퓨터로 무장한 셀레라 제노믹스가 단 3년 안에 모든 해독을 끝내겠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결국 2000년에 인간 DNA 비밀이 밝혀졌음을 발표하는 역사적인 자리에는 이 벤처 기업의 대표가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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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보듯 오늘날 과학기술의 성패는 다양한 연구 분야를 지원할 수 있는 적절한 연구시험 장비와 이들 장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지원체계에 달려 있다. 과학연구 장비를 개발, 생산하고 다양한 응용을 지원하는 이른바 과학기술서비스 산업에 전세계 R&D 투자의 4%에 달하는 막대한 R&D 예산이 분산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