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평가 공공기관 CEO, 마음 무거운 까닭

'우수' 평가 공공기관 CEO, 마음 무거운 까닭

양영권 기자
2009.06.23 09:14

[기자수첩]

A씨는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A씨는 한 정부 산하기관의 최고경영자(CEO)다. 지난주 발표된 공공기관장 평가에서 '우수'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기뻐하는 모습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말투는 느리고 어눌했다. 가벼운 농담을 건넸지만 쉽게 표정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조직개편을 놓고 간부들이 말다툼에 가까운 격론을 벌이는 것을 보고 왔는데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A씨는 조만간 팀장급을 15% 정도 줄이는 조직 개편을 해야 한다. 2012년까지 정원을 10∼15% 감축하기 위한 첫번째 조치다. 벌써부터 내부 직원들의 반발이 심해 걱정이다.

직원들이 반발하는 것은 단지 상당수가 실직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임직원들이 거의 매일 밤 늦게까지 초과 근무를 해야 할 정도로 일손이 부족하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신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전담 부서 없이 태스크포스(TF) 형태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공공기관 CEO들은 A씨와 비슷한 걱정을 하고 있다. 지난 주 경영평가에서 4명의 CEO에 대해 해임 건의가 이뤄진 것도 CEO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강한섭 영화진흥원장은 공공기관 가운데 유일하게 정원 감축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 퇴출 결정의 첫번째 이유로 지목됐다.

다른 3명의 CEO들도 정원 감축과 임금 삭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공공기관 '선진화'와 '경영효율화'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인원을 많이 감축하고 월급을 많이 줄일수록 '선진화'된 '효율적' 기관으로 평가된다.

공공기관의 고유 업무는 각 기관마다 달라 평가가 주관적일 수밖에 없지만 인원 감축과 임금 삭감 실적은 객관적으로 드러나 퇴출 구실로 삼기가 쉽다. 하지만 고유업무 수행과 인력·임금의 적정성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

'선진'은 '문물의 발전 단계나 진보 정도가 다른 것보다 앞섬'이라고 정의된다. '효율'은 '애쓴 노력과 얻어진 결과의 비율'이라고 풀이된다. '발전'이나 '진보', '결과'는 인력이나 비용을 투입하는 시점에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공기업 선진화와 효율화는 인력과 비용만을 고려하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든다.

"기관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 정원을 좀 늘려주는 인센티브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A씨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정원 감축 계획을 잘 만들어 좋은 평가를 받으면 정원을 늘리게 해달라는 말이다. 앞뒤가 안맞는 말이지만 공감가는 이유는 정부가 내세우는 공공기관 선진화와 효율화의 논리가 그만큼 치밀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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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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