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한은의 23번째 초상화

[기자수첩]한은의 23번째 초상화

배성민 기자
2009.07.02 08:04

서울 남대문로 한국은행 별관 8층 강당에는 퇴임한 역대 한은 총재 22명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그간 총재는 현직인 이성태 총재를 포함해 23명이다.

별관 양쪽 벽에 나란히 배치된 초상화에는 몇가지 얘깃거리도 전해진다. 이경식 전 총재(20대)는 정부의 감독체계 개편안(은행감독원 분리)에 동의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이 반대하면서 수년간 초상화조차 걸지 못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최근 불거진 한은법 논쟁의 시작이었던 셈이다.

반면 전철환 전 총재(21대)는 처음으로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을 겸임했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졸업을 지켜보기도 했다.

초상화 속 인물들도 그들의 이력을 반영한다. 관료와 금융인, 기업인까지 겸한 김준성 전 총재(13대)는 소설가로서 흔적인 양 책을 들고 있다. 조 순 전 총재(18대)는 1세대 유학파로 경제학계의 석학답게 영문서적을 끼고 있다.

아직 비어 있지만 퇴임 후 걸리게 될 이 총재의 초상화는 공교롭게도 강단에 가까운 끝자리다. 옆에 한 자리 여유가 있지만 끝이라 눈에 확 띄게 마련이다.

이성태 총재는 초상화 자리만큼이나 그의 재임 중 일들로 기억될 여지가 많다. 사상 초유의 금융·경제위기로 초저금리와 양적완화정책을 실시해 경기부양과 회복의 불씨를 제공했고, 일부 잡음도 나오지만 36년 만에 새로운 고액권도 내놓았다.

올 하반기에는 또다른 관점에서 한은과 그의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경기회복 이후와 물가 급등 등에 대비한 이른바 '출구전략' 때문이다. 정부와 재계, 금융계, 학계, 정치권 등에서는 한은이 너무 성급하다고, 또는 너무 더디다고 이런저런 의견을 쏟아낸다.

"경기하강이 거의 끝났다"고 밝히기도 한 이 총재는 여전히 "변수가 많다"며 지난달 국제결제은행(BIS) 총회에서 각국 중앙은행 수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공감대를 전하기도 했다.

유화물감으로 그려지는 초상화는 덧칠해도 상관없지만 그와 한은의 행보는 맞물릴 수 없다. 회갑에 접어드는 한은뿐 아니라 이제 겨우 한숨 돌린 경제를 위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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