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의료산업 중심으로 우뚝 선 서울아산병원, 그 성공의 비결
"이른바 '명의(名醫)' 혼자서 진료하는 방식은 없어질 것입니다. 한 의사의 진료경험을 모든 환자에 적용하는 것은 의사의 횡포일 수 있어요. 최고의 진료는 세분화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렸을 때 가능해집니다. 이같은 시스템을 갖춘 '환자중심병원'의 진료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을 입증해보이겠습니다."

이정신 원장(59.사진)이 그리는 서울아산병원의 모습이다. 말 그대로 '환자중심'을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올해초부터 암환자를 가운데 두고 내과와 외과, 마취과, 방사선종양학과 등 관련 진료과 전문의들이 모여 최적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방식의 통합진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아산병원을 찾는 12만명의 암환자 중 절반이 이같은 방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환자들이 관련 과를 찾아다니는게 아니고 의사들이 모여서 의견을 종합하는 시스템이다.
이 원장은 "사람마다 얼굴 생김새가 다르듯 같은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라도 상태는 제각각 다른 만큼 치료법도 모두 달라야 한다"며 "같은 원칙으로 모든 환자를 똑같이 대하는 것은 의사의 횡포"라고 강조했다. 맞춤의료 시대를 맞아 병원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은 1989년 개원하면서부터 의료계 역사를 다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환자중심'이라는 구호를 처음 외쳤고, 병원들이 진료성적을 갖고 경쟁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생체간이식이나 심혈관중재술, 뇌질환질환 치료 등의 분야는 세계 최고 경지에 올랐다. "후발주자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선 환자 많이 보고 좋은 성적 내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이 원장은 말했다.
그 결과, 1000개 병상으로 시작한 병원은 2700개 병상 규모(건축 연면적 47만3885㎡)로 3배가량 성장했으며 외래환자만 연 220만명이 찾는다. 하루 유동인구가 4만명에 육박하며, 서울에서 전기세와 수도세를 가장 많이 내는 사업장이다. 서울아산병원의 앞으로 20년에 의료계가 집중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원장은 "하버드의대 보스턴병원이 태평양 건너에 있는 '못 올라갈 나무'라고 생각하던 시절에는 겁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경쟁상대라고 생각하니 밤에 잠이 다 안온다"며 웃었다. 그는 올해로 20주년을 맞는 서울아산병원의 창립멤버로 기획조정실장과 진료부원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원장직에 오른 아산병원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를 만나 서울아산병원의 앞으로 20년을 들어봤다.
-요즘 '환자중심' 병원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먼 얘기처럼 들리는 게 사실입니다.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암 환자를 예로 들어볼까요. 암환자들이 처음 암 진단을 받으면 막막하기만 하죠. 방사선치료를 받을지, 수술을 할지 고민하다 병원 여기저기 헤매다니게 됩니다. 정신적 충격을 받은 환자의 입장에서 이같은 과정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병원은 암환자와 가족 앞에서 관련 진료과 모든 의사가 모여 치료방법을 결정해주는 시스템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4년간 시범운영한 결과에요. 이른바 '통합진료시스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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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의료현실에서 의사들을 한 곳에 모아 의견을 나누고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치료법을 찾아준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실 힘들었습니다. '왜 의사를 오라 가라 하냐'부터 '다른 의사 의견을 왜 들어야하느냐'까지 보수적인 의사들을 설득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죠. 더 중요한 포인트는 여태껏 의사들이 치료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아무도 몰랐다는거예요. 환자와 자신만 아는거에요. 근데 통합진료를 하게되면 실력이 동료들에게 다 공개돼요.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입니다.
-의사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실력을 서로 공개하지 않고 혼자 진료하면 교만해지기 쉬워집니다. 자기의 결정을 과신하게 되죠. 골프만 봐도 프로는 자기가 실수한 것만 기억하고, 아마추어는 잘한 것만 기억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의사도 같습니다. 잘못한 것 개선하면서 발전해 나가야죠. 한번 해봤는데 치료 잘됐다고 그 방식으로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동료의사 조차 납득하지 못하는 치료법을 환자에게 시도하는 것은 절대 용납하면 안됩니다. 의료는 '리콜'이 안되잖아요.
-시범적으로 운영하다가 이제는 본격적으로 도입한 상태인 것으로 아는데요. 의사들 반응은 어떤가요.
▶다른과 의사들과 긴밀하게 이야기하니까 몰랐던 것도 알고, 서로 교육이 많이 돼요. 시너지효과가 나는 거죠. 환자는 더 좋은 치료를 받으니 당연히 만족하고요. 우리병원에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는 의사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월급받는 의사가 아니라 '우리 병원'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환자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병원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단순히 환자를 치료하는 병원에서 산업의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하던데요.
▶병원이 환자 치료만 하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의료산업의 핵이 됐어요. 지금처럼 많은 환자를 치료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으면 안된다는 뜻이죠. 병원의 역할을 재정립할 때에요. 지금 병원은 거대한 연구소로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수술하고 약주는데 급급했는데 지금은 그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신약개발로 이어져 바이오, 의료이라는 새로운 산업을 형성하고 있어요. 의사들의 노동력 뿐아니라 아이디어가 부가가치를 발휘해 산업이 되는 것이 가능해진 시대라는 것이죠.
-신약연구개발에서 임상의사들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맞춤의료시대에는 더욱 중요해질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대형제약사들이 개발한 신약을 가지고와서 의사들을 가르쳤어요. 이런 기전으로 병을 치료하는 약이니 써달라고요. 그럼 의사들은 사용할지의 여부를 결정하는거죠. 대부분 한가지 약을 거의 모든 환자에게 썼어요. 약에 환자를 맞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하지만 이제 환자에게 맞는 약을 개발하는 시대에요. 환자를 직접 치료하는 의사 역할이 중요한 이유죠.
-다국적 제약사들이 우리나라 대형병원을 찾는 일이 부쩍 늘어난 것 같습니다. 향후 우리 의료산업이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을까요.
▶능력있는 인재와 임상경험, IT(정보기술) 능력까지 갖추고 있으니 당연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 병원에만 글로벌임상시험 총괄책임자로 활동한 의사가 6명이나 됩니다.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이유입니다. 지난 10년간 전국 1등부터 3000등까지는 모두 의대에 갔어요. 이런 두뇌가 연구에 몰입해 산업화를 앞당기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다면 충분히 경쟁력 있습니다. 선진국에 비해 시작이 10년 정도 늦긴 했지만 자동차산업 쫓아가는 것 보세요. 엄청난 속도죠.
-그동안 바이오벤처들을 병원안으로 끌어들여 연구를 같이 진행해온 것으로 아는데요. 성과가 있나요.
▶2004년에 아산생명과학연구소를 짓고 가장 먼저 한 일이 바이오벤처기업을 만나는 일이었어요. 우리가 가진 임상능력과 합쳐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녔습니다. 많은 성과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크리스탈지노믹스와 개발한 분자표적 항암제는 스위스에서 전임상 연구중이고, 퓨처캠과 개발한 양전자단층촬영(PET)용 암진단 표지자 시약은 세계적인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고 임상시험 중입니다. 글로벌 블록버스터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정말 병원이 거대한 연구소가 되는 거네요, 이번달 23일에는 아예 신약연구개발업체들과의 중개연구에 특화시킨 연구소 공사에 착공한다고 들었는데요.
▶꽤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연구소입니다. 바이오의료산업에 기여한다는 명확한 목적을 가진 특별한 연구소가 될 겁니다. 단순히 연구를 위한 연구소가 아니예요. 아산병원에서 제2의 빌게이츠와 마이크로소프트가 나올거라고 확신합니다. 지금까지는 의사들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 의사들이 사회에 공헌하게 되면 인식도 많이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요즘 의료관광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정부도 달러를 벌 수 있다면서 적극적인 모습인데요.
▶의료관광이 중요하긴 하지만 의료산업의 극히 일부에 불과합니다. 너도나도 뛰어들어 휩쓸리다 본질이 왜곡될까봐 걱정됩니다. 신중하게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가격을 좇아오는 환자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환자에게 건강권을 지킬 수 있도록 지식을 주고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외국환자들을 끌어들이는 것보다는 의료후진국 의사들을 교육하는등 좀 더 큰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