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신 서울아산병원장(59)의 한국행은 고 이문호 초대원장과의 인연때문에 이뤄졌다. 1969년 서울의대에 입학해 석사학위까지 취득하고, 1980년 미국으로 떠난 이 원장은 그곳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친 후 엠디앤더슨암센터 등 내로라하는 유명병원에서 전임의로 활동했다. 1986년에는 미국 필라델피아 템플의대 폭스 체이스(Fox Chase) 암센터 교수로 임용돼 폐암치료 전문가로 자리를 잡은 터였다.
당시 재단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아 서울아산병원을 설계한 이문호 초대원장은 학창시절 눈여겨봤던 이 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그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이 원장은 병원 운영의 핵심인사로 연구소 만드는 작업부터 진료시스템 개편, 증축 등 병원 성장의 정점에 있었다.
바이오벤처 등 연구개발업체와 병원의 중개연구가 활발한 미국에서 생활했던 탓인지 바이오의료산업에 대한 열의는 누구보다 강했다. 보건복지가족부가 병원 당 200억원을 지원하는 혁신형연구중심병원사업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획단계부터 참여해 복지부 공무원들과 함께 미래를 위한 장기프로젝트를 만들어냈다.
2006년 시작된 이 사업에는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이 선정돼 각각 세포치료와 암표적치료, 심혈관질환치료 분야 연구개발을 추진중이다. 이 원장은 원장으로 취임한 이후에도 병원 혁신형암연구중심병원 사업단장직을 겸임하면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미래를 생각하는 리더십과 추진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일화 하나. 1989년 서울아산병원에 합류해 연구소를 짓는 특명을 받은 이 원장은 화학기업 듀퐁이 미국 델라웨어주에 전에 없던 최신 연구소를 지었다는 얘기를 듣고 무턱대고 찾아갔다. 한번 지으면 100년은 써야하는데 대충 지을 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회사에서 설계도면을 보여줄리는 만무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는 일. 두 번 더 찾아갔고, 3번째에 도면을 받을 수 있었다. 뜻이 있으니 도와주는 사람이 생겼다.
암 환자를 가운데 두고 관련 진료과 의사가 모두 모여 최선의 치료법을 결정하는 통합진료시스템을 직접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진료부원장이던 2005년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통합진료센터를 만들고 2개팀 시범운영으로 시작해 올해부터 18개팀으로 본격 운영된다. 서울아산병원을 찾는 12만명의 암 환자 중 절반 이상은 이같은 방식으로 치료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