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기에 봄기운이 돌면서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해외에서는 버냉키 미 FRB의장이 월스트리트 저널 기고문을 통해 아직 출구전략을 시행할 시기가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만반의 대책이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국내의 경우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과 이성태 한은총재는 출구전략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반면 KDI는 그동안 팽창 기조를 유지해 온 통화와 재정 정책의 정상화를 주문하고 나섰다.
필자는 출구전략이란 투자 용어가 경제 정책의 방향타로 쓰이고 있는 게 적절한 지 의문을 갖고 있다. 비상장 기업에 투자했다가 기업 공개 시 이를 현금화시키거나 부실기업에 돈을 넣었다 나중에 지분을 팔고 나가는 것 같은 투자 행위를 출구전략이라고 하는 데 이게 지금의 경제 정책의 여건과 선택을 정확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고 본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뿌린 돈을 다시 걷어 들인다는 의미에서는 그럴 듯한 용어이지만 수익을 남기기 위한 투자행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계적으로 워낙 광범위하게 쓰이는 용어가 된 만큼 본래적 의미를 근거로 출구전략의 시의성과 타당성에 대해 따져 보고자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전략 자체가 출구인 만큼 또 다른 입구가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출구에서 어떤 방식으로 언제 빠져 나오느냐에 따라 국내외 경제가 새로 찾아 들어갈 입구의 방향이 달라지게 돼 있다는 점이다.
투자의 출구전략에는 두 가지가 있다. 이익 실현(take-profit)과 손실 최소화(stop-loss)다. 정책적 선택의 결과에 따라 둘 중 하나의 길을 가게 된다.
먼저 이익 실현의 길. 소비와 투자, 수출 등 전반에서 정상적인 체력을 회복했을 때 돈줄을 조이고 이게 물가 안정을 가져오는 최선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 살리고 물가도 잡는 '아주 좁은 문'을 향한 입구전략이 필요하다. 풀린 돈으로 버블이 생기지 않게 하면서 고용과 소비, 투자심리를 북돋우고 부작용 없이 재빨리 돈줄을 죄는 妙手가 필요하다. 그만큼 정부는 한쪽에는 인플레이션, 다른 쪽에는 디플레이션을 놓고 둘 다를 피해가는 절묘한 줄타기 정책을 해야 하는 부담을 갖는다.
다음은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자칫 시기나 방법을 잘못 선택할 경우 올 수 있는 손실의 길.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역사가 이를 잘 입증해준다. 그만큼 실수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책이 너무 늦게 움직여 풀린 뭉칫돈이 물가의 고삐를 풀어 버린 상태. 2000년 대 초반의 미국과 1980년 대 후반의 일본이 '지각 증후군'의 실태를 잘 보여 준다. 미국은 9.11 테러 발생 후 급속 냉각된 경기에 군불을 지피기 위해 2001년과 2002년에 공격적으로 금리를 내린 후 저금리를 너무 길게 가져간 탓에 주택버블을 키워 결국 지금의 경제와 금융위기를 가져오는 재앙을 자초했다. 일본도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급격한 엔화 강세의 충격을 중화시키기 위해 금리를 크게 내렸지만 1988년 경기회복 이후에도 이를 방치해 부동산 버블과 붕괴를 시작으로 '잃어버린 10년'의 새로운 입구로 경제가 진입해 버렸다. 현재의 국내외 경제도 똑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정책의 무게중심이 지나치게 경기부양에만 실려 긴축에 늑장 대응할 경우 경제는 새로운 버블과 스태그플레이션의 입구로 향하게 될 우려가 크다.
둘째는 정책이 너무 빨리 움직여 겨우 피기 시작한 경기의 싹(green shoots)을 고사시켜 버리는 경우. 30년 대 대공황 당시의 미국경제가 전형적인 예를 보여 준다. 루스벨트의 다양한 경기부양 처방으로 소생기미를 보이던 미국 경기는 37년과 38년, 두 해에 걸쳐 급격히 가라앉고 실업률도 19%까지 치솟았다. 경기가 다 살아났다고 오판한 FRB가 지급준비율을 한꺼번에 두 배로 올리고 미 의회도 세금을 올리는 잘못을 범했기 때문이다. 섣부른 판단이 경제를 더블딥(경기의 이중침체)으로 몰고 간 사례이다. 2009년 지금의 상황에서도 동일한 실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지난 2분기 중 1분기 대비 2.3%의 성장세를 보였지만 이는 정부가 일시적으로 돈을 풀거나 세제혜택을 준 단기성 효과의 덕이 큰 것일 뿐 '완연한 봄'을 선언하기는 시기상조이다. 재정이 해 준 '경기 도우미'역할을 소비와 투자가 견실하게 받아 줄 때까지 현재의 정책기조에 변화를 주는 건 위험한 선택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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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언급한 것처럼 현재의 경제 상황은 정확하고 시의 적절한 해법을 실행에 옮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돈을 뿌렸다가 조이는 출구로는 언제든 나갈 수 있겠지만 앞에 놓여 있는 세 개의 입구 중 최선의 길목을 찾아 들어 가는 게 그리 쉬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의 입구도 피하면서, 더블딥의 함정도 피하면서 성장과 물가, 두 마리의 토끼를 함께 잡는 '매우 좁은 길'로 진입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정책의 '정밀한 조준사격'이 요구되는 시점인 것이다. 시중에 넘치는 돈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조급한 '출구전략'보다 경제를 제대로 된 안정화의 길로 들어서게 한다는 '입구전략'의 관점을 갖게 된다면 정부는 물론 기업과 가계 같은 경제주체들도 호흡이 긴 중장기적 시각을 가지고 경제의 큰 틀을 보게 될 것이고 이런 사회적 공감대 속에서 '우리경제의 正道'가 찾아질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