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부탁으로 40대부터 주례.. 신부의 주례 보이콧(?)도 기억에 남아
-"국세청장 되서 기업인 만난적 없어"
-"여성임용, 국세청 권위주의 타파할것"
-"연말에 국세청 변화 진전, 평가할 것"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12층 백용호 국세청장(사진)의 집무실.
학자출신인 그의 방에는 의외로 책이 없다. 벽 한면을 모두 차지한 책장에는 세법 관련 책이 달랑 4권 있을 뿐이다.

백 청장은 텅 빈 책장의 이유를 묻자 “책을 많이 갖다놓을 필요가 있을까요. 언제 와서 언제 나갈지 모르는데. 그냥 올 때처럼 저기 옷걸이에 걸린 옷만 들고 나가면 끝이죠”라고 대답했다.
“공직을 마치면 언젠가는 다시 학교(이화여대)로 돌아갈 생각인데 책을 굳이 여기에 둘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사실 세법 익히기도 바빠요(웃음)”
◇불투명 유리 집무실=그의 집무실 책장은 텅 비었지만 오히려 국세청 1층 당직실의 책꽂이는 천천히 채워지고 있다. 저녁 5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당직을 서는 직원들을 위해 매달 책을 사서 당직실에 보내고 있다. 백 청장이 보낸 미식견문록, 이외수의 청춘불패 등이 밤 새는 직원들의 고단함과 무료함을 달랬다.
바뀐 것은 청장 집무실의 텅 빈 책장 뿐만 아니다.
벽 한쪽과 출입문을 투명유리로 만들어 ‘투명한 국세청’을 상징했던 집무실도 불투명 유리로 교체됐다. 어떻게 보이느냐에 신경쓰기 보다 적어도 ‘쇼’는 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여태까지 국세청장이 되서 한번도 기업인을 만난 적이 없어요. 원칙대로 하는데 투명한 유리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네요”
이전 국세청장의 방은 투명유리로 문과 벽을 만들어 외부에서도 누구나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였다. 꺼릴 것 없이 모든 것을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단명 청장’의 불운을 씻기 위해 풍수지리를 따라 청장 집무실을 옮겼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98차례 결혼식 주례의 비밀=최근 그의 관심은 당연히 국세청의 변화다. 국세청이 달라지고 있다는 얘기를 이곳저곳서 들을 때면 잘 해나가고 있다는 확신이 든다. 물론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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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개청 이래 공모직이긴 하지만 최초의 여성국장을 탄생시킨 것도 그다. 국세청내 여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가 이처럼 여성 인력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국세청의 조직문화와 관련이 깊다.(재정직 업무 특성상 여성 비율이 낮았던 탓에 행시 출신 여성 사무관이 국세청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2003년의 일로 국세청내 여성 고위인력은 전무했다)
여성의 깐깐함과 부드러움이 국세청내 변화를 이끌어내고 권위주의를 타파할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국세청의 권위적인 분위기를 먼저 잡아야 해요. 세무조사 중지권한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 납세자 보호관도 깐깐하지만 부드러움을 지닌 분이 오셔서 일을 하면 국세청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백 청장의 이 같은 여성인력에 대한 믿음은 그의 오랜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시절부터 비롯됐다는 것이 주위의 평가다.
합리적이고 권위와는 거리가 먼 그의 성격 덕분에 그는 이대 교수시절 제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40대때부터 봐주기 시작한 제자들의 결혼식 주례가 벌써 98차례를 넘겼다.
한번은 예식장 도우미가 주례 서기엔 너무 젊은 그를 신랑의 친구로 착각해 “사회자께서는 주례석 말고 사회자석에 서 주세요”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신랑이 자신의 은사를 주례를 내세우겠다는 얘기에 “우리 백 선생님 주례가 아니면 결혼식장에 안 가겠다”고 신랑을 협박한(?) 신부도 기억에 남는다.
◇“연말에 국세청 변화 평가”=그는 국세청 개혁, 혁신이란 단어를 싫어한다. 완전히 뜯어 고쳐 불안감을 자극하기 보다는 할 수 있는 일부터 차분히 해 나가겠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본청의 권한을 지방청으로 이전하는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고 직원들이 잘 따라와줘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연말쯤이면 이 같은 국세청 변화방안을 평가해 국과장들의 공과를 물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비주의 청장’이라는 이상야릇한 별명 앞엔 웃음을 지을 뿐이다.
“아마 내가 처음부터 언론에 나오고 적극적으로 홍보를 했다면 직원들이 ‘잠깐 있을 사람이 외부에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구나’하고 국세청 변화방안에 동참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지금 국세청 변화의 시발점이 됐고요”
최근 백 청장은 비염이 더 심해졌다. 계절탓도 있지만 강행군을 하다 보니 피로가 쌓여서다. 요즘엔 취미인 등산도 그나마 잘 못 다닌다(그는 국세청장에 임명됐다는 소식도 경기도 예봉산 정상에서 전해들었다).
백 청장은 “연말쯤에는 달라진 국세청 모습에 대해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겁니다”라며 기자와의 짦은 만남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