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실버금융 컬렉션 30/ 유언 신탁
아름다운 인생 여행의 끝자락에서 꼭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잘 사는 것 못지않게 아름다운 죽음을 준비하는 일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웰다잉(Well-dying)'의 중요한 축인 유언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다. 부모의 사후, 준비하지 않은 죽음으로 인해 가족들이 서로 반목하고 분쟁을 벌인다면 이보다 더 가슴 아픈 일이 있을까.
이런 의미에서 부모의 뜻을 자식에게 남기고 싶을 때 유용한 금융상품이 유언신탁 등 자신관리형 신탁상품이다. 일본ㆍ미국 등 선진국의 고령자들이 널리 활용해온 상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자산 노출을 꺼리는 분위기 등으로 인해 활성화되지 못한 면이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일부 생명보험사와 은행, 증권사 등에서 선진형 신탁 상품들을 속속 내놓으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유언신탁, 상속인 어리거나 장애 시 유용
#1. 최근 시한부 선고를 받은 주부 A씨는 어린 중학생 자녀를 세상에 홀로 남기고 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특히 이혼한 남편의 친권이 부활돼 A씨가 남기는 재산을 탕진할까봐 걱정이 앞선다. 올해 열 다섯 살인 아이는 아직 돈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나이라 성인이 될 때까지 든든하게 맡길 곳이 절실하다.
#2. 지적장애 아들을 둔 노령의 B씨는 자신의 사후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사치가 심하고 동생에 대한 배려가 없는 첫째아들이 과연 장애를 가진 동생을 잘 돌봐줄 수 있을까 염려되기 때문이다.
A씨와 B씨의 경우처럼 신탁(信託)은 특히 상속인이 어리거나 장애 등으로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 준다. 신탁은 현금이나 유가증권, 부동산 등의 재산을 제3자(수탁자)에게 맡겨 관리나 운용 등의 절차를 위탁하는 상품을 일컫는다. 비단 약자가 아니더라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을 때 유용하다.
박혁진 삼성생명 신탁파트 과장은 "신탁은 1인을 위한 단독 사모펀드로 볼 수 있다"며 "특히 돈을 불리는 게 목적인 투자신탁과 달리 '관리형 신탁'은 고객의 의사에 따라 금융회사가 수익자를 위해 개별 맞춤형 재산 관리를 해준다"고 설명했다.

실버세대를 위한 신탁상품 어떤 게 나와있나?
삼성생명은 2008년 11월 보험업계 최초로 상속ㆍ증여를 위한 '생전증여신탁'과 장애인 가정을 위한 '특별부양신탁' 등 신탁 상품 2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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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증여신탁은 고객이 살아있을 때에는 재산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고, 사망 시에는 안전하게 수익자에게 양도해줄 수 있도록 구체적인 재산관리와 시기까지 정해놓은 상품이다. 치매 등 건강이 염려되는 고령자들이 활용하기에 알맞은 상품이다. 혹여 건강이 악화돼 치매 등으로 의사 전달이 어려워져도 주변에서 임의로 재산을 빼돌릴 수 없다.
특별부양신탁은 정신적ㆍ신체적 장애로 인해 재산관리가 불가능한 경우에 안전하게 재산을 지키는데 도움을 주는 상품이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가 생전 또는 사후에 자녀에게 장기적ㆍ안정적으로 생활자금을 마련해주고 싶다면 이 상품을 활용하면 좋다.
이 상품은 특히 현행 세법에서 피상속인(통상 부모)이 생전에 장애인 자녀 등에게 사전 증여한 재산을 신탁하게 되면 5억원까지 증여세를 면제해주기 때문에 나중에 상속세를 줄일 수도 있다. 이들 상품의 신탁금액은 최저 1억원 이상이다.
미래에셋생명도 지난해 9월 평생부양신탁과 생전증여신탁을 내놨다. 또한 유언서 작성과 관련한 모든 절차를 대행해 주는 유언신탁도 생보업계 최초로 선보였다. 애초에 유언서만 보관하다가 사망 시 신탁계약을 설정할 수도 있고, 처음부터 신탁 계약을 맺어 사망 시까지 운용하다가 사망 시 유언내용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배하도록 계약할 수도 있다. 이 유언신탁의 최저 가입금액은 제한이 없다. 단 평생부양신탁과 생전증여신탁은 최저 1억원 이상부터 가입이 가능하다.
은행권에서는 처음으로 연초 산업은행이 유언신탁을 출시했다. 이 유언신탁은 고객의 유언서 작성상담 및 보관에서부터 유언의 집행까지 유언과 관련된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최저 가입 한도는 5억원 이상이다.
외환은행도 VIP고객을 위해 유언서 작성지원, 보관, 상속재산의 집행 및 유훈(遺訓) 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유언신탁서비스'를 최근 선보였다. 이들 상품을 활용하면 전문변호사 및 세무사의 상담을 통해 상속재산을 둘러싼 남은 가족의 혼란과 분쟁을 방지하고 원만하게 재산을 이전할 수 있다.
증권사에서도 유언신탁 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2월부터 고객 유언장을 최대 40년간 보관해주는 유언신탁 서비스를 선보였다. 유언장를 작성할 때 법무법인에 내야 하는 공증수수료도 10% 깎아주는 혜택이 있다. 유산신탁 금액은 최소 1억원 이상이다.
하나대투증권 ‘유언서 보관 및 유언집행’ 서비스는 상속자산 1억원 이상의 고객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 유언서 보관 및 유언집행 관련 수수료는 계약을 통해 별도로 적용되며, 유언서 작성 시 법무법인을 통한 공증수수료는 할인을 해준다. 유언서는 회사금고를 통해 보관되며, 유언서 보관 수수료는 최초 연 10만원, 그 이후에는 매년 5만원의 수수료가 부과된다.
동양종합금융증권의 '유언서 보관 및 유언집행' 서비스도 고객의 사후를 대비해 유언서를 보관해 줄 뿐만 아니라 고객 사망 시 유언서 내용대로 유언을 집행해 상속재산의 이전, 명의변경, 배분 등을 대행해준다. 민경배 동양종합금융증권 신탁팀장은 "거래 금융회사를 통한 유언서비스는 이용이 편리하고 상속관련 재무설계 서비스도 받을 수 있어 일반적인 법무법인의 유언서 공증보다 한 단계 앞선 서비스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유언신탁은 관심은 높지만 아직까지는 실제 계약까지 이뤄지는 것은 극히 드문 편. 한 신탁 담당자는 "지금까지 상담은 40여건 진행했지만 실제 계약 건수는 단 1건이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혁진 삼성생명 과장은 "부동산을 맡길 경우 재산형태가 (매매 등으로) 중도에 바뀌면 안되고, 장애인 자녀에게는 5억원까지 (사전 증여 시) 증여세가 면제되지만 신탁 기간동안 원본은 훼손하면 안 되는 등 세제와 제도의 취약점이 현재로선 유언신탁 활성화의 주요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신탁 시 중도 변경이 쉽지 않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김현진 산업은행 신탁부 팀장은 "생전신탁의 경우 위탁자가 원하는 경우라도 중도해지가 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금수요를 사전에 충분히 고려해 신탁을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