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2437곳, 특구 공화국 대한민국]①그 많던 특구 왜 실패했나(상)

2437개. 2024년 기준 전국에 지정된 특구 수다.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가 226개임을 감안하면 한 개 지역당 평균 10개 이상의 특구가 중복 지정된 셈이다.
지역특화발전특구, 규제자유특구, 외국인투자지역특구 등 이름은 다양하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차별성은 없다. '특별하지 않은 특구'만 넘쳐난다. 정책 효과는 떨어지고 기업들의 관심에서도 멀어진다. 그동안 수많은 특구가 지정됐어도 산업개발과 지역발전이라는 본래 정책 효과 달성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최근 이재명정부가 발표한 메가특구도 마찬가지다. 최고 수준의 규제특례와 정책지원 패키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차별성 없이는 또 다른 중복 특구만 양산할 뿐이다. 기존 특구의 구조조정과 함께 새로운 제도 정비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1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특구란 산업개발, 지역발전, 외자유치 등을 목적으로 특정한 지역을 지정해 예외적인 권한과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다. 한시적으로 각종 규제가 완화되는가 하면 세제혜택이나 보조금 지원 등의 혜택이 제공되기도 한다.
1970년 자유무역지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특구제도가 운영돼 왔으나 각종 특구 난립에 따른 유사·중복 문제 등으로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특구제도는 2024년 기준 11개 부처에서 총 87개의 특구·산업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 2437개 지역에 지정된 상태다. 이 중 절반 이상은 2010년대 이후 지정된 곳들이다. 2024년 이후로도 특구가 추가 지정됐음을 감안하면 현재는 이보다 수가 더 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구 운영 주체가 여러 부처에 산재해 있고 각 지자체에서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특구도 있다보니 특구별 차별화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대개 비슷한 특례 등을 내세우고 있는데 기업의 투자를 이끌만한 매력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구 지정기준도 구체적이지 않아 지자체가 요구하면 바로 지정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부산의 경우 부산 내에 지정된 특구의 총 면적은 1824㎢로 부산시 전체 면적(770㎢)의 2.4배에 이른다. 26가지 유형의 100개 이상 특구가 지정됐는데 한 지역에는 최대 12개의 특구가 중첩되기도 했다.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들어선 특구는 제대로 관리되기 만무하다. 새로운 특구 유형을 만들었지만 지자체 수요가 없거나 인센티브 부족 등으로 사실상 사문화된 특구도 다수 존재한다. 마리나산업단지, 소프트웨어진흥단지, 인쇄문화산업단지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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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특구지만 지역의 유치경쟁에 따라 여기저기 특구를 지정하다보니 '예외적 혜택 부여를 통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제도 본래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전국에 2400여개가 넘는 특구가 있어도 지방의 인재 유출은 계속되고 수도권 쏠림현상은 더 심해졌다. 국토균형발전을 목적으로 도입된 특구제도가 지역 나눠먹기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현재까지 특구제도에 대한 평가는 실패에 가깝다. 전국 수천개 특구에 수조원의 예산을 쏟아부으며 각종 혜택과 규제완화를 제공한다고 했지만 지역균형발전과 산업진흥이라는 기대효과는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수도권 쏠림현상은 오히려 심해졌고 특구 내에서도 목표 대비 실적이 현저히 미달한 사례들이 빈번하다.
특구의 실패 요인으로 △컨트롤타워의 부재 △입지 적정성 부족 △미흡한 성과평가 등 다양한 요인이 꼽힌다. 특정한 컨트롤타워 없이 각 부처·지방자치단체별로 중구난방으로 특구를 지정하다보니 유사·중복 특구가 많아지고 각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특구 지정으로 산업 유기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특구 지정 이후 제대로된 성과평가도 없어 수없이 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오류가 반복된다.
21일 국회예산정책처의 '지역 산업클러스터 정책·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9월 기준 10개 중앙부처에서 52개 유형 2330개의 산업클러스터를 지정·운영하고 있다. 관련 예산 규모는 최근 5년(2021~2025) 간 총 6조5000억원에 이른다. 재정경제부 조사 기준으로는 11개 부처가 2437개의 특구를 운영 중이다.
수천곳의 특구에 수조원의 예산을 투입했으나 지금까지 성과는 일자리, 지역내총생산(GRDP), 연구개발(R&D) 실적 등 전반적인 측면에서 미흡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구의 도입 취지는 지역에 과감한 혜택을 제공해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2000년 46.3%였던 수도권 인구 비중은 2019년 50%를 넘었고 지금도 수도권 인구 쏠림은 계속되고 있다. 2019~2023년 인구이동 추이에서도 '직업'을 전입사유로 수도권에 순유입되는 비중이 가장 높은 상황이다. 지방에 아무리 특구를 만들어도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을 찾는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제적 격차도 여전하다. 수도권의 GRDP 비중은 2014년 49.6%에서 2022년 52.8%로 높아졌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GRDP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는 양상이다. 수도권 면적은 전체 국토의 8분의 1 수준이지만 수도권의 사업체 수, 종사자 수, 매출액 비중 등이 전체의 절반을 상회하는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특구 내 실적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특구 유형 중 지역혁신클러스터의 경우 2024년까지 신규고용 1만785명을 기대했으나 실제 고용은 5424명으로 절반에 그쳤다. 사업화 매출액 역시 기대(2조8000억원) 대비 절반인 1조6000억원에 불과했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목적으로 지정된 경제자유구역에서도 시간이 지날수록 외국인직접투자(FDI)가 감소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경제자유구역 1기에 해당하는 인천과 부산·진해의 경우 FDI 실적은 2019년 15억4000만달러에서 2023년 8억2000만달러로 감소했다.
한 지역에 여러 특구가 중복 지정되는 경우가 많고 특구별로 차별성도 없다보니 기대했던 정책효과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국의 특구·산업클러스터는 2300~2400여개에 달하는데 기초지자체 수(226개)를 감안하면 한 개 지역에 10개 이상의 특구가 중복 지정된 셈이다.
전문가들은 특구가 실패한 요인 중 하나로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꼽는다. 특구제도를 운영하는 부처는 산업통상부, 국토교통부, 중소벤처기업부, 농림축산식품부 등 10여곳이 있다. 산업부는 경제자유지역과 자유무역지역, 국토부는 도심융합특구, 입지규제최소구역, 중기부는 규제자유특구, 혁신특구 등을 담당한다.
뿐만아니라 각 지자체에서도 자율적으로 농공산단, 일반산단 등을 특구로 지정해 운영할 수 있다. 범부처 컨트롤타워 없이 각 주체마다 특구를 지정하다보니 같은 지역에 중복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컨트롤타워의 부재는 부적합한 입지선정으로도 이어진다. 특구 중 상당수는 해당 지역의 주력산업과 일치하는 않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지자체에서 바이오, 반도체 등 인기 산업만 유치하려 하다보니 기존 주력산업과의 고려가 없었던 것이다. 컨트롤타워가 있었다면 지역 정합성 등을 고려해 적절한 산업을 배치했겠지만 중구난방으로 지정된 특구는 지역 산업과의 시너지를 떨어트리는 결과를 낳았다.
특구에 대한 성과평가가 부재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앙대 연구에 따르면 전체 57개 특구 유형 중 성과관리 체계를 보유한 유형은 19%에 불과했다. 81%는 제대로 된 성과평가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온 셈이다.
논문을 작성한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성과관리 체계의 부재로 인해 특구가 도입됐음에도 실제로 지정되지 않거나 운영되지 않는 사례가 존재한다"며 "특구제도 전반에 대한 운영과 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이라고 설명했다.
특구가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고려보다 지역 나눠먹기로 변질됐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경제자유구역이나 규제자유특구의 경우 입지 특성에 따라 지정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만 현재는 사실상 시도별 하나씩 지정된 상태다.
박동욱 민주연구원 연구위원은 "현재 특구제도는 지역별 나눠주시식으로 추진돼 역량이 분산되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근본적인 정리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