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위크 커버]광화문 개벽/ 그때 그 시절 '광화문의 추억'
지난 9월15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진행 중인 <종로 엘레지>전. 고전 음악다방 ‘르네쌍스 다방’에서부터 없는 게 없는 만능 전자제품 시장 ‘세운 상가’까지 옛 광화문 거리의 명소들이 고스란히 재현돼있다. 특히 최근 재개발을 맞아 자리를 옮기게 된 청일집은 예전 벽지까지 그대로 가져와 옛 장소를 완벽하게 복원, 아련한 추억을 불러낸다.
화려한 종로의 상징이었던 ‘화신백화점’이며 자유부인들의 주무대였던 관철동 일대의 요란한‘캬바레 간판’들도 볼 수 있다. 특히 전시물마다 양쪽 벽면을 활용해 옛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도록 해 놓아, 추억을 새록새록 불러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600년이라는 오랜 세월 동안 서울의 중심지로 일컬어진 광화문 거리. 흰머리 희끗희끗한 어른들이라면 광화문통에 추억 한 자락 남겨두지 않은 이가 누가 있을까. 그 광화문 거리가, 지금 또 한번 대변신을 앞두고 있다. 잠시 눈을 감고, 지난 50년간의 광화문의 옛 추억에 잠겨보는 건 어떨까.
서울역사박물관 <종로 엘레지> 전의 아련한 추억을 담은 사진과 함께 광화문 일대에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로부터 광화문 반세기의 옛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종로 깡패? 그래도 그 사람들은 인간적이었어~.”
1960년대, 광화문 사거리. 지금은 ‘참치집’이며 ‘횟집’ 등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마다 가득 채우고 있었던 간판은 ‘OOO 국회의원 사무실’. 지금이야 널찍한 도로에 차들이 가득 차 있는 풍경이 당연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차조차 다닐 수 없는 좁은 골목길마다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정치인들이 활보하고 다녔다.
그 당시 종로에서만 볼 수 있었던 또 다른 풍경. 지금의 교보문고 맞은 편 거리에는 늘 10여개의 조그만 의자가 주르륵 놓여 있었다. 그 의자의 주인은 까까머리 구두닦이 소년들. 쨍그랑 쨍그랑, 구두를 닦아 모은 몇 푼 안 되는 동전이 어느 정도 쌓일 때 쯤이면 어김없이 자릿세를 받으러 ‘종로의 주먹’들이 등장하곤 했다.
하루벌이의 적지 않은 부분을 뚝 떼줘야 했던 고단한 삶. 1958년부터 50년 넘게 광화문 한자리를 지켰다는 구둣방 아저씨는 “그래도 그때는 사람 사는 정이 넘쳤다”고 추억한다.
“저기 종로 쪽에는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주활동 무대였고, 여기 광화문 쪽은 김두한 반대파들 지역이야. 그런데 그때는 깡패라고 해도 지금이랑 달라. 덩치 큰 주먹들도 다 우리 단골이니까 오며가며 힘든 거 없는지 물어보고 토닥거려주고. 사람 냄새가 났지. 지금 직장인들은 다들 자기 일이 바쁘니까 단 몇 마디 살갑게 건네기도 쉽지 않잖아.”
◆“음악다방과 선술집, 뜨거운 젊음을 여기서 불태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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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광화문은 뜨거운 청춘의 집결지로 떠오른다. 국회의원 사무실 대신 다방이 자리잡고, 젊은이들은 통기타를 들고 음악에 심취했다. 지금은 한국무역보험공사가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 자리, 연다방은 송창식이나 조영남 등 당대 젊은 통기타 가수들이 매일같이 들러 노래를 하던 아지트나 다름없었다고 한다. 단성사에서 영화를 보고 르네쌍스 다방에서 고전 음악을 듣고, 청진동 선술집을 전전하며 자유분방한 담론을 즐기는 것은 그 시대 젊은 예술가들과 학생들의 특권이었다.
지금은 교보문고 옆 르메이에르 건물에 새로이 터를 잡은 청일집 주인아주머니는 “당시만 해도 가난한 대학생한테 공짜 막걸리도 많이 줬다”며 추억 한 자락을 풀어 놓았다. 생전 처음 본 사람과도 그저 같은 날 같은 곳에서 술잔을 기울인다는 이유만으로,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청일집을 청춘으로 가득 채우던 시절이었다.
“피맛골 골목마다 학생들이 불러댔던 노랫자락이 그립지. 그때는 청춘이어서 그런가, 다들 술 한잔 들어가면 얘기만 나누는데도 목소리가 어찌나 커지는지. 그때 그 손님들 중에 아직도 단골이 많은데, 다들 사는데 지쳐서 그런지 요즘엔 손님들 표정부터 예전 같지가 않아.”

◆“으리으리한 건물, 겉모습은 더 좋아진 것 같은데…”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명성을 떨치던 광화문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무렵. 지금은 세종로의 중심이 된 세종문화회관이 1978년 개관하고,국내 최대형 서점인 교보문고도 1981년 문을 열었다. 이로써 얼추 지금과 같은 세종로 사거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반면 국내 1호 백화점 화신 백화점은 1980년 문을 닫고 몇 년 뒤 건물조차 헐리고 만다. 지금 화신백화점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현재 동아일보 바로 옆에 위치한 서린호텔도 1990년대 초반 간판을 내리고 역사의 한켠으로 사라지고 만다.
젊은 음악가들의 아지트 연다방은 1980년대 후반 지금의 한국무역보험공사 건물로 바뀌었는데 이때쯤해서 광화문 일대에 지금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건물들이 속속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으리으리한 건물들에 새롭게 자리 잡은 기업과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좁기만 했던 골목길 역시 점차 지금과 같은 넓은 도로로 변모했다.
이 당시 직장인들이 퇴근 후 술한잔 기울이며 위안을 받던 곳이 무교동의 음식점들과 세종문화 회관 뒤편의 음악카페들. 지금은 재개발 바람에 떠밀려 대부분 문을 닫거나 자리를 옮겼지만, 당시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과 ‘섬’ 등이 유명했다. 삶에 지친 직장인들이 주인장의 기타 소리에 맞춰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마음을 달래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지금은 사라지거나, 당시 새롭게 생겨난 건물들 이야기를 풀어내던 광화문 50년 터줏대감 구둣방 아저씨는"광화문 한가운데 서린 호텔이 정말 위풍당당한 모습이었다"고 회고했다.
“청계천 복원되면서 세운상가가 없어지고 대신 주변에 관광객이 많아지니까 요즘은 커피숍만 느는 것 같아. 예전에는 늘 얼굴 보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까. 건물도 그렇고 옛날에 비하면야 훨씬 좋아졌지. 그거야 앞으로 더 좋아질 거 아닌가. 그런데 사람 사는 건 예전만 못한 것 같아 섭섭할 때가 가끔 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