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 주주권 행사 강화 땐 정부 기업간섭 우려 커져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제기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강화가 정치적 배경에 따라 정부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간섭하는 '무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를 통해 정부정책에 유리한 방향으로 기업의 경영노선을 바꾸게 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칫 국민 돈으로 조성된 국민연금이 기업을 옥죄는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다.
김영신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27일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통해 안정적 수익을 얻어 기업 가치를 제고하고 주가를 상승시켜 투자자에게 이익이 돌아오게 한다는 게 현재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논리"라며 "하지만 이를 통해 실질적으로는 특별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위탁운용사나 관료 정치인 등이 국민연금을 도구화하는 것이 대표사례"라며 "정치적 논리로 선거를 앞두고 국민연금을 통해 주가를 부양하거나 관료나 위탁사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기업에 압박을 행사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주 공무원연금(캘퍼스)은 의결권 행사 자문사가 기업컨설팅도 같이하는 경우가 있어 특수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지침에는 환경, 기업지배구조 개선 등 사회적 책임투자의 경우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 연구위원은 "정부의 영향을 받는 국민연금이 강력한 주주권을 행사할 경우 정부정책에 우호적인 쪽으로 경영노선을 변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처럼 될 수 있는 이유로 △가입자인 국민이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절차 등에 관심이 부족하고 △내부정보가 비대칭적이며 △의사결정 과정이 정부 등 특수이익집단에 유리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업의 경영권 분쟁 등 첨예한 이슈가 발생할 때 정부의 입김이 세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제시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A대표는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대주주의 지분율이 낮은 경우가 많다"며 "캐스팅보트를 쥔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할 경우 기업들은 눈치를 보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다른 기관투자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A대표는 "자산운용사는 국민연금으로부터 위탁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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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는 정부가 민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주주행동주의는 자생적으로 출발해야 하며 정부가 나서서 하는 경우는 없다"며 "정부가 민간의 영역을 침범해 의결권 강화를 주도하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윤 교수는 "독립성과 전문성이라는 의결권 행사의 기본 전제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이런 식으로 드라이브를 걸면 다른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신철호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연기금이 기업에 투자하는 기본 목적은 수익을 얻기 위한 것이며 경영참여나 지배가 아니다"라며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기업경영이 이런 원칙을 벗어났을 때로만 국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연기금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하는데 (기업에 대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운영되면 그릇된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리가 강화되면 직·간접으로 기업에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지는데 이렇게 되면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신 교수의 판단이다.
기업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보다 현 체제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며 기업들과 소통을 늘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홍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심 교수는 "기본적으로 국민연금의 주인은 국민인데 이를 놓고 정부가 왈가왈부하는 게 적합하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중소기업 지원정책을 입안할 때는 대기업과 공정한 경쟁이 이뤄지도록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며 "초과이익공유제나 동반성장 등의 개념을 내세우면 기업들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심 교수는 "현 정부가 예전 정권에 비해 친기업정책을 펴 온 것은 사실이고, 기업들이 도움을 받은 부분도 크다"며 "이를 근거로 (기업들의 희생을) 요구하기 보다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공정한 시장질서를 만드는데 주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 와중에 재계는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민간기업 경영에 일일이 간섭하려고 한다면 차라리 모든 기업을 공기업화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