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연의 머니로드]

고대 그리스 신화를 보면 '파리스의 황금사과'가 등장한다. 가장 아름다운 여신만이 가질 수 있는 이 '황금사과'를 두고 헤라, 아프로디테, 아테나 등 그리스의 3대 여신은 치열한 쟁탈전을 벌인다.
세 여신은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에게 '황금사과의 주인이 누군가'를 묻지만 뒷감당이 무서웠던 겁쟁이 신들은 판결을 일개 인간에게 떠넘긴다. 그 주인공이 바로 트로이의 왕이자 아버지인 '프리아모스'로부터 버림받은 '파리스'다.
세 여신은 선택의 대가로 각자 권력(헤라)과 힘(아테나), 그리고 아름다운 신부(아프로디테)를 제안했다. 왕자로 태어났지만 친부에게 버림받아 양치기 목동으로 비운의 인생을 살던 파리스는 '인생 뭐 있어' 하는 식으로 아름다운 신부(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나, 향후 트로이 전쟁의 빌미가 된다)를 택했다.
일개 인간의 선택으로 '미스 올림푸스'에서 탈락해 분노한 헤라와 아테나는 파리스에게 '트로이 전쟁'이란 혹독한 운명을 선사했고, 결국 파리스는 모국과 함께 전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만다.
최근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놓고 정부와 재계사이에서 벌어지는 논쟁과 이를 넋 놓고 바라만 보고 있는 연기금들을 보면 '파리스의 황금사과'가 떠오른다.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는 26일 정책토론회에서 "국민연금 등 연기금들이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견제해야 한다"며 논쟁에 불을 지폈다. 그는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견제할 효과적인 수단으로 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한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가 가장 적절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는 즉각 '연금사회주의', '신관치'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연기금을 통해 민간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대기업 옥죄기나 길들이기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고 비난한다.
정부와 재계의 논쟁을 보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마음은 착잡하다.
'주인(국민)'은 따로 있는데 연기금의 주주권을 정부의 경제정책에 활용하겠다는 미래기획위원회의 발상도 이상하지만 정당한 주주권 행사까지 '신관치'나 '연금사회주의'로 몰아세우는 재계도 우습다.
'파리스의 황금사과'에 비유하자면 미래기획위원회는 잘못된 선택으로 파국을 맞은 파리스를 닮았다. 재계는 기업공개를 통해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을 스스로 선택했으면서도 그 선택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인간에게 선택을 맡겨 놓고 정작 그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불행의 씨앗을 남긴 여신들처럼.
권리 행사의 주체지만 목소리 한번 제대로 못 내고 정부와 시장의 판결만을 기다리는 연기금들은 올림푸스의 겁쟁이 신들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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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권은 말 그대로 주주의 권리다. 국민을 대신해 주주권을 행사하는 연기금들은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책임 있게 수행하면 그만이다.
정부의 역할은 연기금 운용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위해 기금운용위원회를 독립시키는 일 뿐이다. 대기업에 대한 공적 견제와 감시는 정부가 아니라 주주들이 할 일이다.
재계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기업공개를 통해 주주경영을 선택했다면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간섭'이 아닌 동반자의 충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