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만큼 남다른 관계가 또 있을까. 정작 아들은 삶의 중턱에 이르러 자신에 녹아있는 아버지를 발견한다. 아들이 아버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시점은 그 때 부터 일런지 모른다.
이만득삼천리(154,200원 ▲700 +0.46%)회장의 장학 사업도 그렇게 시작됐다. 선친인 고 이장균 명예회장의 교육열은 남달랐다. 사람의 인격 형성에 유전, 환경, 교육의 3가지 요소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중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게 교육이라는 소신을 가졌다. 그는 이런 교육철학으로 장남인 고 이천득 전 부사장과 차남인 이만득 회장을 혹독하게 훈육했다. 너무 엄격해 원망을 사기도 했다.
"아버지께선 배움의 열정은 컸지만 배울 수 없는 환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교육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셔서 교육열이 남달랐던 것 같아요."
고 이 명예회장은 회사 창업 후 틈만 나면 특별 강사를 초빙해 직원들은 물론 그 자녀들까지 불러 모았다. 1977년부터는 전 직원 자녀들에게 고교 및 대학 등록금을 지원했다. 당시로선 웬만한 대기업들도 엄두 내지 못한 일이다.
"처음에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우리 형제는 아버지와 인재 육성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게 됐습니다. 형님과 저는 아버지의 뜻을 보다 체계화하기 위해 장학사업을 시작하기로 뜻을 모았죠." 이만득 회장 형제는 1987년 각각 사재를 출연해 장학재단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본격화했다. 재단 이름은 두 형제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 '천만장학회'로 명명했다.

찬만장학회 설립 작업이 막바지에 이른 즈음 형인 이천득 부사장이 뜻하지 않은 중병을 얻었다. 이 부사장은 입원중에 천만장악회 출범식에 참석할 정도로 끝까지 열정을 쏟았다.
"출범식을 감격스러워 하던 형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형님은 출범식 후 병세가 급격히 악화돼 2주 만에 세상을 뜨셨어요. 끝내 첫 장학금 수여식에는 참석하지 못하셨죠."
천만장학회가 올해로 설립 25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모두 1311명에게 31억3000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2009년부터 지원 대상을 대학생에서 고교생까지 확대했고, 우수한 고교생에게는 이후 대학 4년간 등록금을 전액 지원한다. 이는 이 회장의 아이디어였다.
"학비가 크게 올라 실력이 있는 데도 대학진학을 미리 포기하고, 낙담하는 고교생들이 있다는 얘길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당장 천만장학회 이사들에게 실력은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고교생들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천만장학회는 앞으로 등록금 부담이 커가는 상황에서 장래가 촉망받는 고교생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겁니다. 아버지와 형님도 기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